작가주) 2년 전 미국 거주 시에 쓰다만 초고를 다듬어 발행하였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 생활과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야?
글쎄, 자유로운 거 아닐까. 물론 한국 말고 미국.
한국에서 살 때는 내가 보호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자주 받았었다. 지하철을 타면 스크린도어가 나를 낙상사고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등산을 가면 곳곳에 설치된 로프들이 나를 낙하사고로부터 지켜주었다. 좀 높다 싶으면 펜스가 쳐져 있었고 좀 위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접근금지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은 좀 과하다 싶을 만큼 국민의 위험을 예방하고 보호해 주는 나라였다.
미국은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전 반대다. 보호장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이런 문구들이 쓰여 있다.
at your own risk
본인의 책임 하에
처음으로 시카고 전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시카고 다운타운 전철은 지상으로 달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상 위 건물 3층 정도 높이에서 달린다. 이를 "L"이라고 부르는데, "elevated (높은)"의 약자로 높은 곳에서 달린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그리고 이 "L" 의 전철역 station 역시 건물 3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승강장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조금 위험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도어는 커녕 계단 난간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외부 펜스 역시 높지 않아 잘못 기대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사람이 실수로 철로에 떨어질 수도 있고 잘못하면 펜스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안전장치를 대충 해놨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곳 역시 동일한 문구가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at your own risk 본인의 책임 하에"
그래, 자기 인생 스스로 책임지고 조심해야지.
국립공원도 마찬가지였다. 펜스가 쳐진 곳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열어두었다. 처음에는 꽤 당황스러웠다.
그랜드캐년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랜드캐년은 노스림 Northrim 과 사우스림 Southrim 으로 나뉘는데, 우리의 첫 도착지는 노스림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트레킹을 위해 길을 나섰다. 첫 트레킹 코스는 Bright Angel Point Trail 이었다. 이름처럼 환하게 밝은 천사가 나타날 것만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천사를 펜스 방해 없이 영접하기 위해서 인지는 몰라도, 메인 코스 외에는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가운데로 똑바로 걷는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조금만 옆으로 가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바로 노출되는 그런 트레일이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걸어야 하는 우리 부부는 당연히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입은 항상 "벽에 붙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벽에 붙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 비가 내려 잠시 바위 아래 앉아 쉬고 있었다. 옆에 아이 셋을 데리고 온 한 가족도 비를 피해 우리 옆에 앉아있었다. 내가 물었다.
여기 안전펜스가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불안하지 않으세요?
그 물음에 미국 엄마가 대답했다.
네, 뭐 하지만 괜찮아요. 트레일 너비도 넓고, 우리가 조심하면 되니까요.
곧 비가 그쳤고, 그 가족은 아이 셋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인드 자체가 다른 듯했다. 왜 이렇게 보호장치를 설치해놓지 않았지, 가 아니라 우리가 조심해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조심하면 된다지만 사실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관련 기사) 그럼에도 변함없이 각자의 책임 아래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이었으면 같은 유형의 사고에 장관이 사퇴하고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 브런치 글(https://brunch.co.kr/@hyunkisong/150)에서 미국 놀이터에서의 일을 설명한 적이 있다. 미국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그네가 달린 철봉 위에 올라가 균형 잡기 대결을 한다거나 학교 옆 개울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도록 놀더라도 부모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넌 위험하게 왜 거기 올라가서 노니 혹은 지저분하고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는 곳에서 왜 노니 같은 꾸중이 이어졌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만 세 살도 안 되는 아이가 사다리를 홀로 타고 올라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곳이니 말 다했다 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놀이터에서 자주 첫째 아이와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 한국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어떻게 노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 아마도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아이들 곁에는 늘 부모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그 아이가 미취학 아동이라면 대부분의 부모가 딱 붙어 서서 아이를 지켜본다. 지저분한 거 있으면 못 만지게 제지하고, 위험한 곳은 애초에 못 오르게 하며,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뛰지 마”, “거긴 안 돼”, “손대지 마”, “친구 먼저 하고 있잖아” 등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미국 아이들 노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위험하게 놀아도, 집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을 맨발로 다녀도, 물을 뒤집어쓰고 동네를 젖은 채 돌아다녀도 부모는 그저 바라만 볼뿐 특별하게 제지하는 법이 없다. 그대로 둔다.
성인이 되고 세상에 홀로서기할 즈음에는 어차피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야 할 인생이 된다. 그걸 어려서부터 교육받고 체감하며 산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통한 무한한 자유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될 테고 반대로 보호받고 제약된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자유와 책임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의 기본 원칙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책임이 동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즘 들어 아이들 교육, 특히 하나뿐인 자녀에 대한 훈육, 에 대한 고민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 같다. 누구는 과보호라고 하고 다른 누구는 위험사회에 대한 당연한 방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책임 하에 at your own risk" 같은 원칙을 어려서부터 익히도록 하는 것은 필요해 보이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