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 쌍방이 되었을 때

[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by 마흐니

강의를 다니다 보면 짝사랑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 외로운 감정이 들기도 하고 내 처지가 가끔은 서글프기도 하고 또 내 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한다는 건 그렇다. 언젠가 아이들 마음에 무언가 닿겠거니 생각하며 꾸준하게 그저 쏟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기적같이 변화가 발견된다.


교육열이 높은 한 수도권 지역 학교에 출강했을 때 일이다. 1년 동안 고등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진로 탐색과 기업가정신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은 수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당연히 열정적인 친구들이 오게 될 거라 부푼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생활기록부 활동 기록 혜택을 보러 온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육열이 높은 곳일수록 이렇게 사소한 혜택 하나에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 봐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나 역시 입시에 영향을 주는 주요 과목은 열심히 듣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대충 듣거나 졸기 일쑤였다. 하물며 방과 후 수업은 어떨까? 출석 일수만 채우면 생활기록부에 좋은 말을 써준다는 데 대입에 욕심이 있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무튼, 대입에 욕심도 많고 똘똘한 이 아이들은 내 수업에는 영 열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감정교류’가 부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수업에서 감정교류라니 그것이 무슨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싶지만, 진로 탐색 수업에서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대화’가 필수다. 자신에 대해 고민해보고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를 통해서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이 학교 친구들의 경우 자신의 활동지는 잘 채우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은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 사이에 비어있는 에너지, 감정, 따뜻함을 채우기 위해 강사인 내가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이 웃어주고 질문도 많이 하고 이름도 빨리 외우고 친구들의 특징을 기억해주는 것. 그렇게 입시의 압박으로 정신없는 이 아이들을 향한 내 짝사랑은 시작되었다.


유독 이 학교 아이들은 내 학창시절이 생각나게 했다. 친구와 경쟁하고, 공부가 최우선이고, 입시에 중요한 것이 곧 현생에서 제일 중요했던 내 학창시절. 그래서 아이들의 지친 모습이 더 안타까워서 잔소리를 정말 많이 했다. “다른 친구들 공부할 때 듣는 수업이니까 가치 있게 시간 보내자! 즐겁게!”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것인지 별 반응이 없었다. 참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루는 막 즐겁게 참여하는 것 같다가도 하루는 학원을 간다며 차갑게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채워야 하는 출석 일수 확인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게 외롭고 아리송한 마음으로 일 년 내내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생활기록부에 좋은 말이 들어가는 것, 그것뿐인 걸까?’ 속상한 마음이 들며 또 힘겹게 시작한 2학기 수업. 더 큰 위기가 다가왔다. 2학기 수업은 기업가정신이었는데 팀을 이루어서 지역사회의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해결해보는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많은 수행평가와 학원 숙제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직접 우리 사회의 문제를 찾아보고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꽤 버거웠던 모양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는 과정 자체로 배움이 있기에 기업가정신은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일은 벌어졌다. 프로젝트 참여도가 낮아지며 무임승차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갔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친구들의 불만이 치솟으며 울고불고 싸우는 팀이 있기도 했다. 교과 시간에 하는 조별 활동과 다르게 재미있게 참여하기를 바란 내 마음은 물거품이 되었다. 여기저기 우는소리를 하는 친구들을 달래느라 2학기를 날려버린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 수업을 이 아이들과 하고 있었던 것인지 고민이 되었고, 고민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1년 방과 후 프로그램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과연 내 수업이 학생들에게 좋은 시간이었을지, 내 잔소리로 괴롭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영상 편지도 준비하고 그동안의 수업 사진들을 살펴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사진 속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공부로 지친 아이들이 박장대소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 큰 탓에 수업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정말 많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 앞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마음을 졸이듯 나 역시 이 학생들과 함께할 땐 마음이 천국도 가고 지옥도 가고 그랬다. 내가 그동안 오해를 해왔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은 마음 편하게 마지막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은 축제처럼 꾸며졌다. 다른 강사의 수업을 들은 친구들까지 모두 강당에 모여 장기자랑도 하고, 깜짝 선물 증정식도 하고 1년 동안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했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는 축제라고 해도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무대에 잠깐잠깐 나의 모습이 비칠 때마다 우리 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기억 왜곡이 약간 있을 수 있다). “하니! 하니!” 다른 강사들이 “아이들이 하니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라고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차갑던 친구들이 환호해주니 어리둥절했다. 아이들의 이상행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축제의 마지막 순서로 수료증을 나눠주는데 아이들이 먼저 쭈뼛쭈뼛 다가와 토닥토닥 나를 안아준 것이다! “즐거웠어요.” “수고 많으셨어요.”와 같은 말과 함께! 1년 동안 이 아이들을 향해 있던 외로운 짝사랑이 진정으로 쌍방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리둥절하기만 했던 마음이 감동과 벅찬 마음으로 바뀌었다. 평소에 내색 한 번 안 하더니 그래도 내 수업이 좋았나 보다! 기쁘고 시원섭섭한 마음이 숨겨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했던 잔소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려 애쓴 것들이 모두 따스하게 전달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먼저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할 정도로 1년 동안 잘해주었다. ‘생활기록부에 들어가니까 참여하면 좋을 거야’라는 이야기만 하나 듣고 일 년짜리 수업을 꾸준히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힘들게 진행했던 2학기 수업도 생각해보면 학생들이 많은 개인 과제로 힘든 와중에도 잘 해내고 싶으니까 울고불고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의 나를 참 많이 닮아서 늘 성적을 고민하던 이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나를 안아주던 순간은 지금까지 내가 강사로 살아가게 만든 힘이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게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건가 싶어 다음에 만날 아이들에게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다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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