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서툴렀구나,
내가 서툴렀던 만큼

[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by 마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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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안녕하세요. 저는 하니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이 짧은 문장을 내뱉는 순간 얼굴에 열이 화끈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한층 더 아래로 가라앉았다. 인자한 미소로 무장한 현재와는 달리 7년 전 처음 보조강사로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나의 파워 내향성과 온갖 걱정이 뭉쳐져 엄청난 ‘수줍음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다른 강사분이 “어떻게 강사가 학생보다 더 낯을 가리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너무 긴장한 내 모습을 보고 그럴 필요 없다는 의미로 던진 농담이었지만 어쩐지 아직도 내 귓가에 자주 맴도는 문장이다. 사실 내향적인 성격은 핑계다. 겁이 났던 것 같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아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듣고 잘 헤아려 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 언제 처음 아이들을 만났냐고 물어보면 이 시기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처럼 쏙 빼놓고 이야기한다. 기억하기 싫은 나의 흑역사.


이렇게나 두려움이 컸던 내가 어떻게 7년째 강의를 하는 걸까. 지금은 부족해도 언젠가는 자신감 있게 아이들 앞에서 환한 미소를 자연스레 지으며 누구보다 따뜻하게 아이들을 안아줄 내 모습을 상상해왔다. 늘 마음속에 아이들을 생각하며. 지금은 온전히 서 있기 부끄러운 어른이지만 꼭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좋은 에너지를 주겠다 다짐했다. 아직도 많이 흔들리는 어른이고 여전히 낯 가리는 사람이지만 7년 동안 내가 준 온기보다 더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고 바라봐준 아이들과 동료들 덕에 지금도 멋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16년 5월, 날이 아주 따뜻하게 느껴지던 날에 처음으로 한 명의 강사로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들과 총 12회 진행되는 방과 후 진로 탐색 프로그램, 처음 출강한 학교는 집에서 두 시간 넘게 떨어진 한 섬에 있는 학교였다. 운전해서 간다면 금방 갈 수도 있는 곳이었지만 그 당시엔 운전면허가 없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까지 가는 것부터 큰 산이었다. 첫날부터 지각 위기! 심지어 학교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 중간에 내려 다급하게 택시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했다. 이미 반쯤 혼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 강의를 시작하고야 말았다.


첫 강의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기대가 컸다. 수줍게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과거의 하니는 없고 당찬 목소리로 강의하는 내 모습을 기대했다. 내 열정에 부응하여 학생들 모두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도 늘 상상했던 장면. 하지만 모든 것은 예상과 달랐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허둥지둥 강의를 진행하는 나, 그것을 지루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의 흥미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듯했다. 이내 지루하다는 표정이 여기저기 지어졌다. 그냥 짜인 프로그램대로 순탄하게 진행만 하면 아이들이 성장할 거라고 나는 단단히 착각했다. 예쁘게 만든 피피티를 선보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면 당연히 아이들이 나를 쳐다봐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도 했던 것 같다. 대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정답을 알고 싶었다. 여기저기 묻고 싶었지만, 직감적으로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구멍까지 올라온 궁금증을 이내 삼켰다.


이 불안한 시작의 그늘은 수업을 여러 번 진행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수업 때마다 아이들은 수업을 빠져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으러 오기 일쑤였다. 학생들의 영혼이 빠져나간 무미건조한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저 푸석한 영혼의 얼굴에 빛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왕복 6시간을 아주 힘겹게 오갔다.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어쩔 수 없는 원망과 실망감이 내 안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왔다 갔다 하고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참여도가 낮은 거야?’, ‘친구들이랑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라니까 진짜 잡담을 하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갑갑한 마음은 봄을 지나 여름까지 이어졌다.


수업을 여러 회차 진행했는데도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라운드룰을 같이 만드는 시간을 가졌었다.


사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꾸준히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찰떡같이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다. “부모님 포도밭 일 도와드리러 가야 해요.” “뭘 적으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게 없어요.” “대충 적어도 돼요? 제 건 보지 마세요.” 나의 관심과 개입을 최대한 피하려고 애쓰는 이 말들은 모두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힌트였다. 그 힌트 안에는 나의 관심과 따뜻함을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꼭꼭 숨어있다. 나는 그것이 힌트인지, 반항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초초보 강사였다(바보 강사ㅠㅠ). 무엇보다 이 아이들은 내 수업이 끝나고 빨리 버스를 타러 가지 않으면 학원에 제때 도착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다. 혹여나 배차 간격 넓은 버스를 놓칠까 늘 전전긍긍하며 내 수업에 들어왔다. 늘 학교를 끝내고 바쁜 발걸음으로 시내에 있는 학원을 가는 아이들은 모두 맞벌이 가정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자라온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놓인 환경을 파악하면서 원망했던 마음이 이내 죄책감이 되었다. 버스의 배차 간격을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반응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 원망만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강사로서 가장 창피하게 만들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더 쾅쾅 두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정말 어색하고 땀이 삐질 났다. 그저 앞에서 잘 떠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강사가 비로소 교탁을 벗어나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꽤 힘겨운 일이었다. 투박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제발 오늘만큼은 수업을 들어달라고 붙잡아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이 없을 리 없다며 생각해내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군분투라고 하기도 힘든 나의 몸부림을 아이들은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몸부림과 무더운 여름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프로그램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수업해보자고 다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마지막 수업, 학생다운 짓궂었던 질의응답 시간을 끝으로 뒷정리를 하고 교실을 나가려는 데 눈과 코가 새빨개져서 나에게 소리치듯 “가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다가왔다. 나는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저 힘겹게 하루하루 수업을 진행한 것이 전부인데 이 아이는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내가 뒤늦게 아이들의 사정을 알고 서툴게 마음을 열고 노력해온 것처럼 아이들도 사실은 계속 자신들의 마음을 열고 표현하려고 노력해왔다. 버스 배차 간격 걱정 따윈 잠시 접어두고 내 수업에 계속 들어온 것을 보면 말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하고 수업이 재미있으려고 하니까 내가 떠나게 된 것이다. 나 역시도 정이 많이 들어버린, 처음으로 정을 많이 준 이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아쉬웠다.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에 학교까지 세 시간, 다시 집으로 향하는 세 시간, 고생했던 모든 시간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나의 서툰 몸부림 속 진심이 조금은 이 아이에게 닿았던 걸까? 내심 희망찬 마음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꿈꿔 온 강사는 화려한 언변과 유머로 아이들의 마음에 스파크를 튀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다(절대 내가 될 수도 없고). 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꿈을 꾸게 해주고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은 정말 많다. 그런데 고독감을 느끼고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어른은 많지 않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은 내 심정을 모른다고 늘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마음 하나 들여다 봐주면 아이들은 원래 모습 그대로 밝아지는데 그걸 우리는 잘 못 한다. 나는 아이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지금도 역시 그렇고. 6년 전 꽤 무더웠던 초여름에 아이들이 흘린 눈물은 내가 왜 이 아이들을 보듬으며 살아야 하는지 조금은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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