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by 마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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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언제부터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꿈꿨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나에게 교육은 문득 다가왔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여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큰 기쁨이 될지도 몰랐다. 누구나 그렇듯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는 학생들을 만나고 있고 아이들의 표정에 울고 웃는 인생을 살고 있다.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나 곰곰이 생각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학창시절에 시선이 머문다. 10대 때 마주한 많은 사건으로 인해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어렸던 열여덟의 나, 열여덟의 내 친구들을 위해 계속 일하고 있다.


첫 장의 첫 에피소드가 다소 무겁게 시작하게 되어 걱정이다. 그런데도 문득 떠오르는 학창시절의 그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일념으로 영어신문동아리에 들어갔었다. 똑소리 나게 생긴 멋진 선배들이 포진해 있었고 반면에 나는 그 언니들처럼만 공부해서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자 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동아리 시간에 다 같이 미국 시트콤을 자막 없이 보는데 모니터 속 관중의 웃음소리는 들리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선생님이 빨리 자막을 틀어주시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 시트콤을 알아듣고 웃는 이가 한 명 있어서 선생님은 아주 스파르타식으로 우리를 훈련했다. 모든 대사를 알아듣는 그는 영어신문동아리 회장님이었다. 어린 1학년의 눈에 영어를 잘할 뿐만 아니라 늘 우리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던 위대한 2학년 선배였다. 나도 언젠가 저 선배처럼 되리라 다짐하며 특목고 입학에 실패한 씁쓸함을 달랬다.


내 씁쓸함은 결코 달달함으로 바뀌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존경하던 선배님은 보이지 않았다. 동아리 부회장 선배와 선생님만 침울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부회장 선배의 눈시울은 붉어지고 있었고 선생님은 짧게 회장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운 소식을 우리에게 전했다. 친구들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를 옥죄어온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내 눈에 최고로 멋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나에게 멋있다는 것은 영어를 잘하고 전교권의 성적을 의미했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나에게 실로 답답한 시간이었다. 열여덟이지만 내 존재는 마치 실적을 올려야 하는 회사원 신분처럼 느껴졌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등급과 숫자로 평가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거밖에 점수가 안 나왔니?” “오늘은 얼마나 공부했어?” “이렇게 해서 인서울 할 수 있겠어?” 나는 점점 입을 닫고, 눈에 힘을 뺐다. 어른들의 질문 하나하나가 무거운 짐이 되어서 어깨 위에 얹어졌다. 매일 아침 정말 어깨가 아파서 울며 등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어깨에 힘을 주며 살았다.


고3, 수험생이 되니 친구들도 점차 아프기 시작했다. 약을 하나씩 달고 살았는데 위장약, 두통약, 신경안정제 등 별별 약이 다 있다(종합병원이라는 말이 유행이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수능 별거 아니라고 긴장되지 않는다며 허세를 부렸지만 결국 수능이 끝난 후 열병이 나서 링거를 맞고 오기도 했다. 어깨가 아프던 나, 열병이 난 친구 모두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녀처럼 각자의 고통을 안고 수험생 시간을 버텨냈다. 그리고 수능의 난이도 관련한 기사와 함께 안타까운 선택을 한 수험생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떠올리게 됐고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힘들었겠구나 이해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도 ‘견뎌주지’하는 마음이 그제야 들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삶은 다 그런 거라고, 고3 수험생이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것이 어디 있을까? 누가 되었든 이렇게 사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는 있고 견뎌야 할 시련은 있지만 이렇게 내던지듯 감내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보장되지 않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좋은 삶인가. 내 동생들은, 나의 아이는 혼자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짐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누구나 힘든 고교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힘겹게 느껴졌던 그 시간이 결국 나를 교육자의 길로 이끌었다.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로 진학했음에도 마음 한편에 계속 나처럼 암울하게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눈에 그려졌다. 얼마나 힘들까, 또 얼마나 답답할까. 교육 시스템, 문화 등 무언가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그냥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저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 ‘내 편’이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연히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을 돕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별별 교육 활동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학습 멘토링을 해주는 교육 봉사로 시작해서 교육학개론, 교육 심리 같은 과목들을 교양 수업처럼 들었다. 공부는 정말 싫었지만, 전공인 정치학보다 교육학이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내 흥미와 적성이 모두 교육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청소년 진로 강사 모집 공고에 심장이 두근거렸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무작정, 그냥 간절하게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강사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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