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강사라면 아이들을 휘어잡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늘 이런 말들에 주눅이 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잘하나, 내가 남들에겐 없는 특출난 점이 있기는 하나… (아이들이 하는 고민이랑 같다) 요즘도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하지만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더 그랬다.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를 하며 관계를 쌓는 것부터 나의 수업 의도를 활동과 강의자료에 잘 녹여내는 것까지 모두 나에겐 어려운 과제였다.
특히 한 학교에서 20회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열 달 동안 담임선생님처럼 한 학급을 이끌어 가야 했는데 한 학급에는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2학년 친구들은 이미 1학년 때 같은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1학년의 멘토로서 참여하는 친구들이었다. 이 상황이 초보 강사인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다른 강사의 강의를 경험했던 친구들이 내 수업에 들어온다니 얼마나 비교가 될지 프로그램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이 친구는 작년에 우리 회사에서 재미있기로 소문난 강사 반이었네?’ 나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어필해야 할지 고민하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강의 후기는 냉정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그 어떤 학생들보다 구체적으로 내 강의에서 바라는 점들을 제시했다. ‘하니의 예시로 활동 설명하는 것은 줄여주세요.’ ‘저희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해요.’ 학생들 각자가 가진 관심사와 지금 학교를 선택하게 된 배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의 초반이었기에 나온 피드백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프로그램 초반이기에 학생들끼리의 관계 형성도 중요하지만 나와 학생들의 관계 형성도 중요했기에 내 이야기를 공유했던 것인데 어쩐지 내 이야기는 귀에 잘 안 들어왔던 것 같다. 학생들의 예리한 피드백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을 잘 못 하나’, ‘내가 재미가 없나?’, ‘역시, 작년 선생님이 더 좋았나?’ 20회차 대장정, 아직 갈 길이 많은데 프로그램에 초반부터 주눅이 들고 한없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이 학교에서의 수업은 대장정! 이대로 학생들에게 끌려다닐 수도 없고, 또 내 멋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서로 타협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솔직하게 학생들의 피드백에 대한 내 생각을 공유하기로 했다. 따끔한 평가를 받고 난 다음 수업에서 강사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설명했다.
“우리 반 멘토들이 제 이야기는 좀 덜 듣고 멘티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피드백해주었어요. 멘티들 생각을 많이 하죠? 사실 저번 시간에는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 활동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상세히 소개했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멘토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오늘은 꼭 5분이라도 더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정해볼게요! 꼬옥!”
나는 나름대로 피드백을 반영해보겠다고 한 이야기였는데 어쩐지 2학년 아이들의 표정이 시원하지 않았다. 20회차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학생들이 써준 편지에는 모두 미안하다는 말이 가득했다. 멘티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하니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세게 말한 것이 미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이들의 미안함이 좋았다. 이미 좋은 선생님을 한 번 경험해 본 친구들의 마음에 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아이들 마음속에 일어난 나에 대한 감정이 우리를 한층 더 친해지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학생들 앞에서 용기 내어서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수업 피드백을 꺼내 든 것은 내 무기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너희들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노력해보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다양하게 했다. 그리고 진짜 매 수업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고 말이다. 시간 배분부터 재미있는 학습자료 준비,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까지. 이제 막 강의를 시작한 2년 차 강사에게 나만의 무기라는 것은 없었는데 이 아이들은 내가 무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게 계속 기회를 주었다.
7년 차가 된 지금도 저 때처럼 학생들 앞에서 늘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교육자로서 내 무기가 되었다. 너희들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너희들과 역시 배워가는 처지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나를 부족한 선생님으로 생각하기보다 정말로 자신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바라봐준다. ‘수업 재미있었어요’라고 간단히 쓰여있던 수업 후기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세요’라는 기특한 멘트로 바뀌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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