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좋지만, 가르치기 싫어서] 2022년 1월에 쓴 이야기
강의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시작한 것이 있다면 스터디 모임이다. 아이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사례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영감을 줄지, 방학 때마다 한두 달씩 마음 맞는 강사들과 연구를 해왔다. 같이 책을 읽기도 하고 우리가 직접 프로젝트를 해보기도 하면서 수업에 도움이 되는 자양분을 함께 만들어갔었다. 강사라는 직업이 팀이 아닌 혼자 일하는 직업이기에 스터디 멤버들의 존재는 교육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와도 같았다. 내 강의가 현재는 비록 부족하더라도 이 사람들과 함께 계속 공부한다면 나아질 수 있겠다는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까? 우리 모두 서로를 직장동료와 친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강의를 하지 않았다면, 교육하려고 덤벼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귀중한 인연이었다.
이 인연은 아주 무모한 프로젝트를 통해 깊어졌다. 때는 2018년 8월쯤이었다. 나는 미국 여행을 하고 있었고 다른 스터디 멤버들은 한국에서 여름방학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톡방이 아주 시끌시끌했다. 북유럽을 간다나 뭐라나? 나의 합류도 자연스럽게 고려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잠시, 나 이미 전 재산 미대륙에 탕진했는데요? 근데 좋아요!” 전 재산 탕진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같이 가고 싶어서 무작정 오케이! 하고 말았다.
우리는 일 년 내내 각자의 자리에서 돈도 벌고, 영어 공부도 하고 물론 북유럽 교육에 관해서 공부도 하면서 ‘북유럽 교육 탐방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 있는 학교 100여 곳에 메일도 보내면서 탐방 일정을 잡았다. 책에서만 보던 이상적인 북유럽의 교육을 눈으로 확인할 생각에 들뜨면서도 일 년 동안 탐방을 준비하며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동안 했던 공부 목적의 모임이 아닌 프로젝트를 준비하다 보니 생기는 견해 차이, 그것을 좁히는 데 쓰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았다. 북유럽을 다녀와서 책을 쓸 거냐 말 거냐, 다녀와서 함께 창업할 거냐 등 우리 팀의 미래에 대한 이슈부터 현지에서 음식을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까지 모두 함께 논의했다. 이런 논쟁을 거치며 우리 팀이 찢어지지 않고 온전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지 슬슬 걱정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에서 싸우면 어떡하지?’ 하는 작은 걱정이 아니었다. 결국은 ‘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24시간 붙어있는 것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나의 별별 모습을 보고는 팀원들이 질려하면 어떡하지? 다시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였다. 함께 스터디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같이 산다는 것은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내 부담의 근원은 인간관계 실패 경험 때문이었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 어떨 때는 막 불같고, 또 어떨 때는 해맑다. 이런 성격 탓에 친구를 잘 사귀기도 했지만, 친구를 잘 잃기도 했다. 무슨 트러블 메이커도 아니고 어렵사리 사귄 친구와 다투고 헤어지는 일이 나의 학창시절엔 비일비재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갈등을 많이 겪다 보니 스스로 성격이 괴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유럽에서 교육 탐방 멤버들과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내 인간관계 실패는 성격 문제라기보다 사람들과 원활히 잘 지내는 법을 잘 몰랐을 뿐이었다. 함께 북유럽에서 살았던 삼 개월 동안 개인적으로는 조금 긴장하며 지냈지만 웃고 떠드는 즐거운 시간이 더 많았다. 혹시 불만이 있거나 건의할 만한 사항이 생기면 매주 가족회의를 통해서 해결해 나갔다. 워낙에 붙어있는 시간이 많기에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의 골은 나 스스로 정리해 나가는 법을 배웠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산책을 하고 일기를 썼다. 마음이 어지러운 건 내 욕심 때문이라며 함께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정말로 잃고 싶지 않은 인연들이라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북유럽 교육 탐방을 다녀오니 덴마크의 교육은 왜 특별하냐고, 스웨덴 학교는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냐며 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많은 학교를 다녀왔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특별한 방식은 없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행복’, ‘가족’, ‘즐거움’ 같은 것들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었다. 쉬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쉬는 시간을 충분하게 가지고, 대화시간이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대화를 정말로 많이 한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직접 북유럽에 살면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삶에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진짜 대화를 하고,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또 그냥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다.
인간관계에서 나는 성공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판단했고 피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요리조리 잘 피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 우리 팀원들만큼 같이 있는 게 편하고 즐거운 사람을 만난다면 비혼주의를 버릴 수도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말이다. 교육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이 소중한 사람들은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만큼이나 나를 성장시킨 스승님들이다. (같이 북유럽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스릉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