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일터와 여러 공동체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사람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또 하나의 존재를 마주한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만큼 선명하며 우리의 삶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때론 자신을 사람과 동일시해 집어삼키기도 한다. 평소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당신을 해고하고 궁지로 몰아넣거나 또 때론 엄청난 일탈로 이끌 수도 있다.
근래 내가 일터와 몇몇 공동체에서 경험한 일들은,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잘 다루는 일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지금쯤 알 수 있을 것이다.
"넌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쟨,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돼."
"일 하는데 왜 자꾸 감정을 개입시키니?" "이 놈의 감정이 문제야."
주변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보이진 않지만 느껴지고,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녀석. 바로 '감정'이다.
그리고 감정과 관련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감정과 사이가 멀어져 녀석이 마음을 붙잡고 우리를 멋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두는 순간, 녀석(감정)은 곧 우리의 태도가 되고 만다. 이건 정말 무섭고 위험한 일이다. 당신이 누구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최근 회사에서 한 동료가 쫓겨나듯 퇴사를 했다. 이 동료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부 임원과 갈등을 겪었다. 문제는 갈등이 있는 매 순간마다 감정의 동요가 겉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임원과 자주 부딪히던 동료는 언젠가부터 회사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임원의 요청과 지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간순간 쌓인 감정들은 이내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임원이 그를 방으로 불렀다. 원치 않던 이별 통보였다. 분노한 그는 한동안 쌓아둔 응어리를 '펑'하고 터뜨렸다. 한참 고성이 오갔고 그는 몇 시간 동안 전화를 붙잡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불만을 쏟아냈다. 그리곤 오후 6시가 되자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안타까웠다. 잘잘못을 떠나 불편한 감정을 안고 떠난 그의 상처가 누구보다 컸을 테니까. 그가 떠나고 난 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풀리지 않는 감정의 매듭에 불이 붙었고 결국 그 불은 화(火)가 되어 자신과 주변까지 모두 태워버렸다. 자기 방어, 비아냥, 비난 등의 언어로 번지다가 이내 자신의 태도까지 바꿔버렸다.
어쩌면, 그가 회사로부터 받은 상처의 일부는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느낀 숱한 감정들을 조금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고 해소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조금 더 깔끔하게 감정과 태도를 분리해 자신과 주변을 잘 정리하고 떠날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는다.
감정이 태도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 않기란 쉽지 않다. 오랜 기간 수용받지 못한 감정이 우리를 집어삼킬 때는 당사자조차 그 감정과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곪은 상처에서 짜고 또 짜도 계속해서 고름이 나오듯, 묵어서 찌든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틈새로 터져 나온다. 당신의 생각으로 태도로 언어로 행동으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거대한 욕구를 만들어 일상을 휘젓는다. 그래서 감정을 다루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몇 달 전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사람의 감정을 캐릭터로 만든 이야기다. 어릴 적 수용받지 못한 감정들이 커서도 우리 자신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는 옳다고 생각해서 해오던 일과 습관들이 사실은 나의 어떤 감정과 욕구의 결과라는 것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
감정은 자주 인지하고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호흡과 같은 것이지, 억누르고 숨겨서 곪게 나뒀다가 격한 태도나 행동으로 터져버리는 시한폭탄이 아니다.
나 또한 이렇게 끄적이지만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매번 그럴 수도 없다는 것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감정을) 인지하려고 노력한다면 훨씬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기에 이렇게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