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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는 AI와 대화를 잘해야 살아남는다

이선 몰릭의 '듀얼 브레인'을 읽고

by 글로

"누구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 최소한 3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것이라 믿는다."


-듀얼 브레인 中


구글 제미나이 생성


시간이 정처 없이 흐른다. 이직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삶이란 방아쇠는 당겨졌고, 일상이라는 총알은 다시 어딘가를 향해 날아간다. 마음이 어떻든 몸이 아프든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10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며 알게 된 가장 큰 진실은, 그 누구도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생존이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and tide wait for no man)'는 문장을 냉장고에 붙여놓으셨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요즘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하는 분야가 바로 AI다. 오픈 AI의 챗GPT, 구글 제미나이(Gemini) 등 요즘 생성형 AI 도구들의 성능을 보면, 때로는 상대적 무력감이 느껴질 만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류 지성의 총집합체라고나 할까?


그리고 AI 모델들이 점점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쓸모'를 묻게 된다.


이 책은 급변하는 AI 시대 속에서 인간에게 몇몇 질문과 답을 던진다. 우리가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 AI,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라

"델라쿠아는 AI의 성능 수준과 인간의 노력 사이의 상충 관계를 보여 주는 수학 모델을 만들었다. AI의 성능이 뛰어나면 인간이 굳이 열심히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데, 이는 인간의 학습, 기술 개발, 생산성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델라쿠아는 이런 상황을 "운전석에서 잠들기"라고 불렀다." (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中)


구글 제미나이 생성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기술이 등장하면, 우린 늘 기술을 찬양하고 기술의 힘에 편승해 왔다. 하지만 지나친 의존은 우리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생산성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입장에서 생성형 AI는 '양날의 검'이다. 작문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질 수 있지만 그것이 꼭 내가 바라는 생산성은 아니다.


글쓰기의 매력은 글을 쓰는 과정 자체에 있다. 쓰는 중에 알고 있던 지식과 몰랐던 지식이 서로 결합되고, 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까지. 글쓰기라는 과정 자체가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AI도 다른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행위 자체가 주는 몰입과 즐거움은 생략돼 버린 느낌. 예술과 스포츠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작업을 할 때 항상 AI를 초대한다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를 꾸준회 활용하다 보면 들쭉날쭐한 경계의 모양과 이것이 직업을 구성하는 고유의 직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AI의 강점과 우리의 약점이 잘 조율되도록 신중하게 고려해서 AI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지루한 일은 덜 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AI의 역량을 활용하되, 인간이 그 과정에 계속 개입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다."

(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中)




▲ AI,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은 본디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AI는 즉각적이고 괜찮은 결과물, 즉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지름길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곧 모든 종류의 창의적인 작업의 의미가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는 창의적인 작업에 신중한 고민과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종 시간이 작업의 대용물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中)



그렇다고 해서 AI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 이미 AI는 상당수 인간이 해왔던 일들을 해내고 있고, 그 수준은 앞으로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담,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뭘까?


어떻게 AI와 함께 일하며, AI가 한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점검하고 피드백을 줄 것이냐의 문제다. 결국은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어려운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AI가 인간의 두뇌를 본 따서 만든 것이기에 소통과 피드백, 그리고 그를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에 따라 AI의 성능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AI가 실용적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와튼 스쿨에서 가장 유명한 혁신 수업에서 AI가 학생보다 발명을 더 많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대학원에는 혁신이 없다는 농담을 식상할 정도로 자주 듣지만, 와튼 스쿨은 그동안 수많은 스타트업을 배출했고, 그중 상당수는 크리스티안 터베이시(Christian Terweisch)와 카를 울리히(Karl Ulrich) 교수가 지도하는 혁신 수업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두 사람은 동료 교수인 카란 기로트라(Karan Girotra), 레너트 마인키(Lennart Meinecke)와 함께 대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50달러 이하의 제품을 개발하는 아이디어 경진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200명의 학생이 GPT-4와 맞붙었고, 그 결과는 학생들의 패배,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패배했다.


당연하게도 AI는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성했다. 사람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화한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도 AI의 아이디어가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AI의 승리는 놀라울 정도로 월등해서, 심사단이 선정한 최고의 아이디어 40건 중 35건이 챗GPT가 제출한 아이디어였다." (이선 몰릭, 듀얼 브레인 中)



AI를 사용하고 AI와 소통하는('AI와 소통한다'는 표현 자체가 느낌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이젠 받아 들여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방식도 이젠 '감수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감수성이란, AI를 사용하는데 방법이나 효용성을 넘어 인간에게 필요한 윤리와 도덕성 등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말이다.


초고도화된 AI가 시간과 기술이 가져온 피할 수 없는 변화라면, 결국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간에게 이롭게 만드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는 생산성과 경제/사회적 능력(부, 명예, 재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AI가 가져올 지식과 생산성의 평준화가 '인간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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