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부였지만 잊혀진 것들

김초엽 소설,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고서

by 글로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것 없어지고, 나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우르 고팔다스.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中)


새벽 1시, "얼마 전 읽은 소설의 독후감을 써야지" 하고 앉았는데 졸음이 밀려온다. 회사에서 받은 지적과, 해야 하지만 회피하고 있던 일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분명 중요한 일인데, 곰곰이 생각하면 또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 삶에서 영원히 중요하게 느낄 일은 많지 않다. 며칠 골머리를 썩였던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주 오래된 추억으로 희석돼 버린다.




"한때 이브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오랜 시간 나는 이브가 곁에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세계는 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헀다. 다른 존재로 분화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오랜 친구를 포기하는 일도 성장의 일부인지도 모른다고, 모든 관계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김소월, 인지공간 中)




시절은 식물의 마디를 닮았다. 시절을 따라 나무가 몸통에 나이테를 새기듯, 사람의 마음도 어떤 시기를 기점으로 테가 나기 시작한다. 지난 시절은 과거의 증표처럼 남는다. 꼭 그 일이어야 했고, 꼭 그 사람이어야 했고, 꼭 그때여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꼭'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과 감정과 확신을 그리 길게 붙잡아 놓을 수 없다는 삶의 작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문장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알면서도 모르겠다. 결국 혼자라면 혼자 살아야 하는 걸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걸까? 아니면, 나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기에 그걸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걸까? 요즘 들어 '혼자'라는 말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절을 겪으면서 그 말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나를 위해 대화를 멈춘 적 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서로 주고받는 걸 중단한 적이 있어? 공기가 침묵으로 가득 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그런 적이 없다면, 나는 여기 속한 적이 없는 거야."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김초월, 숨그림자 中)




나에게 완전히 친절한 사람과 집단은 없다. 있다면 아마 그건 허상이나 스마트폰 속 세계, 혹은 가상현실일 것이다. 삶에 깊게 관여했던 사람도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다. 스스로 서야 하는 이유는, 모두가 떠난 후 결국 자신과 마주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만이 끝까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러 시절을 겪고 더 단단해진 나만이 나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아갈 순 없다. 혼자임을 알면서도 혼자가 아닐 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떠나는 존재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더 좋다. 다가오는 이도 마찬가지다. 떠나갔다고 해서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 잠시라도 삶의 전부라 여겼다면 진심과 애정을 담았을 테니, 그걸로 족하다.


시간이 흐르면, 또 새로운 존재가 삶의 전부처럼 다가온다. 지난 상처에 피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다시 전념하고 무너지고 뭔가를 배우고 다시 떠나보내는, 그 길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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