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먹고 산다고? 개소리 하지마!

'글쓰기'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자아 실험

by 글로
사진=픽사베이


▲'시(詩)'와 함께한 스물의 시간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2년. 그때는 대학생이었다. '카피라이터'라는 꿈에 부풀어 진학했지만, 주구장창 술로 날을 지새웠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생으로서의 삶을 즐기던 중, 우연히 조인성 주연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조인성은 극 중 유명 추리소설 작가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멋진 유명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세월호는 침몰했고, 그때 처음으로 느낀 감정을 '시(詩)'표현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처음으로 만난 느낌이었다. 난 협조적이었지만 속은 겉도는 아이였다. 세상에 살지만 가까이 다가서진 않고 먼발치서 바라만 보는, 마네킹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시(詩)'도 그랬다. 넌 돈도 못 벌고 화려하지도 않은데, 뭐가 그렇게 항상 편안하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모습이 '시'와 닮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는 나의 베프(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글쓰기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시를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를 쓸 때는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좋을 때나 싫을 때나 썼다.


그렇게 10년을 꾸준히 썼다. 유명한 작가가 되지도 책을 내지도 못했지만 그냥 썼다. 하루하루 눌러쓴 글들은 약 3~40권의 공책이 되어 책장에 쌓였다. 그중 20권 정도는 이사를 하다가 잃어버렸고, 나머지는 블로그와 SNS 등에 옮겨져 있다.




사진=픽사베이

▲서른둘, '글로 먹고살기 위한' 발버둥


눈 떠보니 서른 둘. 이제는 번듯한 직장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삶의 '안정감'이 필요했다.


원고 의뢰를 받아 첨삭을 하고, 블로그 광고 원고를 써주고, 취재 의뢰를 받아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글쟁이'의 삶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부족한 생활비를 위해 배달 알바를 병행해야 했으니까.


"글로 먹고 살 순 없을까?"

"아니, 그건 안될 것 같은데? 현실은 달라. 아직도 모르겠니?"

"그럼, 글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면 어떨까?"

"너도 고집 참 쌔다. 마음대로 해 봐. 네 인생이니까."


그렇게 재취업을 결심했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괜찮으니까, 다시 해보자"는 다짐이었다.


카피라이터든, 기자든, 기획자든, 콘텐츠 제작자든, 블로그 작가든, 뭐가 됐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해도, 이젠 '글쓰기'를 포기하진 않을 확신이 있으니까.

어쩌면, 이 확신은 12년 지기 친구인 '시(詩)'가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친구야, 글로 돈 벌어서 맛있는 것 사줄게."





▲왜 꼭 글로 먹고살아야 해?


누군가는 내게 "왜 꼭 글로 먹고살아야 해?"라고 묻는다. 글쓰기가 좋으면 그냥 취미로 남기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내겐 그게 더 어렵다. 아무리 봐도 나란 인간은 단순하다. 뼛속까지 생존형 인간이다. 쌀도 살기 위해 짓고, 사랑도 살기 위해 한다.


본능을 넘어선 무엇이 있어 글을 쓴다고 자부할 자신이 없다. 정신의 연명도 밥과 관련이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화려한 도시 속에서 혼란스런 정서를 배설하고 다듬지 않고선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다. 글쓰기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위한 내 최후의 보루다.


나의 글에는 더 많은 '처절함'과 '찌질함'이 필요하다. 막연한 장밋빛 길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굳이 기대를 건다면, 쓸 수 있는, 써서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는 투박한 두 손이 아직 멀쩡하다는 정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실험도 끝이 날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떻게 연명해가고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어떻게든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면, 그때는 나의 실험이 유명한 생체실험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