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상상공상망상
토요일 저녁 8시 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TV 채널을 돌린다. 잠시 후 로또 당첨 방송이 시작되고 ‘어…어?…어??…어!…어!!… . …’ 로또 1등에 당첨이 되면, 물론 당첨금이 최종 얼마냐에 따라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선은 설레는 마음을 마음껏 즐기며 일요일을 보낸다. 주말마다 엄마, 아빠랑 시간을 보내니 말 안 하긴 좀 그렇겠지? 나보다 부모님이 더 떨려할 것 같은데…. 당첨금을 수령할 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꽁똔이라고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지 등등 잔소리가 예상이 된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눈을 뜨자마자 급히 연차를 내겠다고 팀에 알리고 여유 있게 모닝커피와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챙긴다. 월요일 아침부터 농협 본점에 가면 누가 보더라도 로또 1등인 줄 안다며 택시를 타면 꼭 그 옆에 남대문경찰서로 우선 가라던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난 그냥 천천히 지하철을 타고 가야지. 괜히 네이버 지도로 가는 길을 검색해본다.
우선 대출금부터 모조리 갚아버려야지. 바로 이체가 가능한지, 아니면 체크카드랑 모바일뱅킹을 만들고 대출한 은행으로 가서 처리해야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이놈의 빚부터 청산할 테다. 그다음은 가족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싶은데, 이건 양도세가 얼마나 되지? 분기별로 맛집 탐방하며 가족 식사할 돈을 따로 통장에 넣어놓는다. 그리고 아빠랑 오빠는 테일러 숍에서 정장 한 벌 뽑고, 나랑 엄마랑 언니는 똑같이 티파니 반지 하나씩 나눠 껴야지.
그리고 남은 돈이 현재 연봉 곱하기 몇 년인지 확인해본다. 15-20년 가능하다면(난 연차에 비해 매우 작고 소박한 연봉을 받고 있으므로), 화요일 출근해서 바로 퇴직 의사를 밝힌다. 부득이하게 근무를 지속할 수 없음을 송구해하며, 속으론 이 지긋지긋하고도 진절머리 나는 그지 같은 일을 때려치움에 격하게 기쁨의 춤을 추겠지. 아, 연봉의 반 정도는 기부도 한다. 십수 년을 꾸준히 기부해왔지만 그 돈들을 다 모아 보아도 천 단위를 넘어서진 못한 것 같다. 이 돈이 다 없어지기 전에, 아까워지기 전에 해야지.
사실 해외로 여행도 가고 싶고, 고민하지 않고 쇼핑도 하고 싶고, 가족들이랑 고오급 독채 펜션에서 주말도 보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분명 더 많겠지만 우선 여기까지가 내가 꿈꾸는 로또 1등의 이야기다. 물론 중요한 것은 당첨이 되야는 것이고, 그것보다 먼저 로또를 사야 하지만 난 사실 로또를 사본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3주 전 지하철을 타러 가다 문득 휴대폰 케이스 뒤에 꽂혀있던 5천 원으로 로또 2천 원 2줄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사본 것이 처음이었다. (남은 3천 원으론 호떡을 사 먹었다.)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로또가 생각났고,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역시나 5등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 주 1등 당첨금이 53억이었다!) 어찌 됐든 내겐 호떡을 사 먹은 게 남는 거긴 했다.
건너 건너 1등이 됐던 이도 있다던데… 할머니, 할아버지, 부디 제 꿈에 오셔서 좋은 기운 좀 주세요! 오늘도 은퇴를 꿈꾸며 로또 1등 상상을 한다. 물론 로또는 사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