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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Jan 09. 2024

마침내, 남편의 버킷리스트를 지우다

돈 모으기는 성취를 배우는 과정일지도 몰라!



2023년 5월! 우리는 드디어 다주택자가 되었다. 남편이 다주택자가 되겠다고 버킷리스트에 쓴지 꼭 4년 만이었다. 몇 번이나 실패한 뒤였고, 이번엔 틀림없다는 확신도 없었지만 확실한 건 지금이 아니면 또다시 용기를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리스크를 감수했고, 로열동도 아닌 3002호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가져보자는 마음으로 매수했다.


청울림은 그의 책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에서 아파트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공급이 많을수록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는 당연한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사실에 따른다면 우리가 매수한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져야 마땅했다. 5천 세대의 대단지 아파트 옆엔 입주일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3천 세대의 아파트가 붙어 있었다. 나머지 잔금을 전세금으로 채워야 하는 우리가 총 8천 세대의 입주 장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매수한 아파트의 분양권이 전국에서 가장 싼 가격이었다는데 위안을 얻으며 계획을 강행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남편의 이름과 내 이름을 나란히 적어 넣으며 공동명의로 아파트 분양권을 계약하면서 많은 날들이 스쳤다. 뜬금없이 이사를 해서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남편을 이해 못 했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결국 이사를 통해 얻은 보증금 차액이 분양권을 살 수 있는 종잣돈이 된 걸 생각해 보면 변화가 있어야 성장한다는 말은 뻔한 이론이 아니라 진리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마이너스 칠천만 원으로 시작했던 시절을 거쳐 결혼 12년 만에 집을 두채 갖게 되었다.


빚도 자산의 일부라면, 팔지 않은 1502호의 가격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책정해봐도 우리의 총자산은 12억이 넘었다. 12억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돈이 분명했지만 이상하게도 집이 두 채가 된 뒤부터는 자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돈이 갖는 가치나 액수를 떠나서 그게 얼마든 우리가 이룬 지금의 자산은 실천하면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였으며 목표를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성실한 매일의 총합을 의미했다.


12년의 결혼생활동안 싸우기도 했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고 의지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제보다 나아지던 우리가 있었다. 남편과 함께 작은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돈을 모아서 작은 성취를 이룰 때마다 사는 일이 보람차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력, 그 동력으로 일궈낸 성취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 우리가 가진 돈이 얼마든 함께라면 이루지 못할 것도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여기서 망하거나 실패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서로를 향해 깊게 뿌리내렸다.



많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오니 입주를 4개월 앞둔 아파트가 페인트를 입고 있었다. 아파트를 등지고 걸으며 남편과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지 않았던 남자. 나를 만나러 올 때 달랑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나와서, '오빠 오늘 만원밖에 없는데.'라고 말했던 자격지심 없이 솔직한 남자. 겨우 스물여섯이었으면서 스물넷 인 나에게 '우리 평생 같이 살자. 내가 널 책임질게'라고 말해줬던 사람. 1억은커녕 오천만 원도 없었던 남편이랑 결혼해서 내 집마련도 해보고 분양권도 사보면서 삶의 여러 처음과 성취를 함께 누릴 수 있어 감사했다.



"자기 그거 알아? 사실 집이 두 채 있다고 해서 다주택자라고 말하지 않아! 세 채는 되어야지!"

"하.. 정말!"


내 감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중간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낄 데 빠질 때를 구분하지 못한 채 나의 감사함에 찬물을 끼얹어 등짝 스매싱을 불렀지만 그해 5월, 우리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꿈꾸고 있어서, 산다는 게 그날만큼은 조금도 외롭지 않아 진심과 농담을 오가면서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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