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하게 내돈내만
독립출판의 묘미는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해서 내가 알아서 내 맘대로 하는 거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나를 위한 책을 만든다. 출판사의 출간 제의를 받거나 투자자로부터 제작비를 받지 않고 내 돈으로 내가 만든다. 많이 팔아서 제작비를 회수하면 좋고, 본전을 찾지 못한다 해도 해봤다는 데 의의를 두면 된다. 혹시 책 팔아서 부자 되고 싶은 마음으로 독립 출판을 하는 분은 없겠죠?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내가 쓴 글로 책을 만들고 싶은 소망을 이루고 싶어서 하는 거 맞죠? 독립 출판물 제작을 직업으로 삼고 밥벌이까지 고려하고 있다면 저한테 연락 좀.. 저도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함께 고민해 봐요. 이 책에서는 자아실현 및 취미 활동으로 책을 만든다고 가정하고 현실적인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 너무 큰 비용을 지불하고 속상하지 않을만큼, 기꺼이 경험과 만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선을 정해보자.
기본 사양으로 만든다고 해도 100만 원 이상은 든다. 10권 이하로 만들어서 자기만 갖거나 선물할 용도라면 20~50만 원 사이에서 예산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가능한 만큼만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딱 한 권만 만든다고 해도 프로그램 비용까지 고려하면 10만 원 정도는 필요하다. 전자책으로 출간된 <나 혼자 발리>를 소장용으로 2020년에 딱 한 권 만들었는데 인디자인과 포토샵 무료 사용기간인 일주일 동안 작업을 마쳐서 인쇄비만 들었고 3만 얼마였다. 지금은 종잇값이 올라서 비용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종이와 후가공 등 하드웨어적인 원가도 품질에 따라 달라지만 그 외에도 돈을 들이자고 하면 얼마든지 제작비는 커진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면 교정 교열을 더 꼼꼼히 봐줄 수 있는 편집자, 표지를 만들어줄 디자이너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만큼의 비용이 추가 된다. <소탐대전>과 <미가옥>을 만들 때는 제작비를 아껴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싶어서 편집, 디자인, 교정 교열, 홍보와 마케팅, 판매까지 직접 한다. 예산 내에서 최대한 책을 많이 만들어서 다 팔겠다는 꿈을 꾸었고 지금도 유효하다. 직접 책을 만들어서 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돈을 벌 수 있을까, 유명해질까,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는 것보다 재미있을까, 책 만드는 전 과정을 경험하고 판매까지 해보면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까, 글 쓰는 작가에서 책 만드는 제작자로 스스로를 다르게 소개하게 될까, 같은 질문을 품고 독립 출판을 시작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나요?
욕심 내서 책을 많이 찍을 수 있었던 까닭은 <소탐대전>의 제작비를 대전문화재단의 예술 지원금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매년 초 지역문화재단에서 시각, 음악, 문학, 연극 등 장르별로 지원사업을 공모한다. 출간 경험이 있는 작가로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등록이 되어 있기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준비지원금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등을 신청할 수 있다.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판매해 볼까 생각만 했지 두 세 달 생활비에 달하는 200~300만 원의 제작비를 사비로 감당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극인, 미술작가 친구들을 떠올리며 문학 출판 분야에 신청할 마음을 냈다.
찾아보면 예술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도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나 거주지의 지자체, 도서관의 출간 지원을 살펴보자. 제작비를 지원받는 경우도 있고 특정 교육 수료 후 제작비를 지원받아 소량의 책을 만드는 워크숍 과정도 있다. KT&G 상상마당에서도 1인당 200만 원을 지원하는 2024 독립 출판 지원사업 지-음 공고를 올렸고 전주에서는 2024 전주도서관 출판 제작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편당 600만 원의 제작지원금을 지급한다. 2023년에서는 인쇄 산업의 중심지인 서울 중구에서 300만원 규모로 독립 출판물 제작 지원을 하기도 했다. 지원금의 집행 및 정산이 번거롭지만 제작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니 여력이 된다면 틈틈이 지원사업 정보를 살펴보자.
펀딩을 받아볼까요?
몇 권이나 팔릴지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면 몇 부나 찍을지 가늠하기 쉬울 터다. 그렇지만 가족이나 친구 지인으로부터 책 나오면 꼭 살게, 라는 말은 사전 투자나 주문이 아니므로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된다.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단숨에 읽고 싶어 하는 독자라면 모를까 의리와 정,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주는 친구들은 사느라 바빠서 내 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하기 위해 출간 전부터 선입금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주변에 나를 아끼고, 지지하고, 돈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후원이나 투자를 좀 해달라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구현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와디즈나 텀블벅이 대표적인 곳으로서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하거나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질 제품을 미리 주문을 받는 게 아니라 제작 과정에 있는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개념이란다. 책을 만들고 싶지만 제작비가 부담되니 관심 있는 분들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주 좋은 책이랍니다. 후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책을 만들고 출간이 성사되면 책을 보내드립니다. 거의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완성될 제품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돈을 낸다는 점에서 후원자는 너그러운 지지자다. 프로젝트를 완결하고 약속한 리워드를 후원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창작자의 책임과 의무이고 플랫폼은 중재자로서 까다롭게 프로젝트를 심사하고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판매하고 싶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수수료는 조건에 따라 10~20% 정도다. 펀딩 과정 자체가 사전 홍보 활동이 되기도 한다.
크라우드 펀딩이 보편화되면서 알라딘, YES24에서도 북 펀딩을 런칭했다. 다만 텀블벅과 와디즈는 개인도 프로젝트를 개설할 수 있지만 인터넷서점은 출판사만 가능하다. (1인 출판사를 등록하고 거래를 시작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다.)
*매주 화요일 뉴스레터로 [소탐대전+속속들이 독립출판]을 받아보실 분은 여기에서 구독신청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