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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04. 2018

새해맞이

한 해의 마음 사전

작년에 인상 깊게 봤던 어린이 책 중에 <아홉 살 마음 사전>이라는 작품이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을 아홉 살의 아이가 느낄 법한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 책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괜찮다’는 말은 ‘뜀틀은 못하지만 그래도 줄넘기는 잘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해 주는 거다. 사실 마음이라는 것만큼 막연하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을 텐데, 내 마음을 그대로 명쾌하게 옮겨 놓은 이 책을 보면서 고맘때 그 시기 아이들이 꽤나 즐거워하겠구나 싶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어쩐지 막막한 단어들을 끊임없이 배워 왔다. 배려와 정직, 용기와 감사, 배신과 절망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수많은 단어들. 그런데 살다 보면 가끔, 희미한 달빛만큼이나 아득했던 단어들이 피부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용기’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노력과 월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과 앞으로의 불안을 담보로 두더라도 어쨌든 나의 행복을 위하여 “퇴사하겠습니다!”를 말할 수 있는 마음이라든지. (그걸 결국 해내지 못했을 때 드는 감정은 절망이라든지.) 이렇게 특정한 단어를 삶에서 피부로 가깝게 느낄 때, 그제서야 그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아홉 살 고맘때 아이들만이 취할 수 있는 마음 사전이 있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나이테마냥 한 살 한 살의 사전이 해마다 새겨졌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작년에도 그렇게 새롭게 용기를 배우고 실패를 배우고 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돌아보면 2017년은 이래저래 애를 썼던 해였다.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고 그래서 울지 않아도 될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던 시간. 뭐라도 끝을 맺고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었지만 결국 하나 달라진 것 없이 어영부영 연말을 맞았다. 그래서 더 속상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름의 위로를 스스로 찾았다. 곁에 둔 사람들에게서, 성경 구절에서, 경험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발견한 위로를 야무지게 챙겨서 나에게 보냈다. 2018년은 그냥 그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요즘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중인데 마침 밑줄을 쳐 놓은 문장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그 말이 이제야 좀 마음에 가닿는다. 나는 여전히 동일하게 무르고 약하고 잘 무너지지만, 앞으로 경험할 삶도 여전히 나를 가만 두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위로를 찾아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은 조금씩 배워 나가는 것 같아서 기쁘다. 마침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스스로에게 마음의 자리를 조금 더 내어 주기에 이만큼 좋은 때도 없을 것이다.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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