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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Nov 14. 2019

파머스 마켓

행복에 대하여  



포틀랜드 주립 대학교에서는 돌아오는 토요일마다 파머스 마켓이 열려. 혹시 ‘킨포크’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한때 국내에서도 열풍 비슷한 것이 일기도 했던 키워드인데 말이지. 사실 포틀랜드는 킨포크가 생겨난 곳이야. 자연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느릿느릿 여유롭게, 건강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화가 참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곳. 


그래서일까, 포틀랜드는 파머스 마켓마저 어딘가 특이했어. 보기만 해도 화려한 디저트보다는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을 파는 가판대 앞으로 길고 긴 줄이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달달한 머핀이나 쿠키보다는 직접 재배한 과일이나 채소, 혹은 김치 같은 것. 상상이 되니? 줄 서서 김치를 사 먹는 미국인들이라니! 


한 송이 꽃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꽃 가판대
직접 기른 유기농 과일과 채소들


마켓 구석구석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걸렸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장면들이었거든. 그곳에서 가장 효과가 있던 ‘셀링 포인트’는 다름 아닌 ‘친환경’이었고, 공원 한 구석은 한의사에게 침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어. 뭐 대단한 것을 하려고, 엄청난 것을 사려고 온 것 같지도 않았어. 그저 꽃 한 다발 사서 휘적휘적 둘러 보든가, 유기농 채소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로 한 끼 간단하게 때우고는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수다를 떨다가 쿨하게 퇴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 한 계절을 공들여 키운 블루베리나 은은한 허브향이 묻어나는 로션, 막 구워낸 빵 같은 것을 자식마냥 자신 있게 자랑하는 셀러들, 활짝 피어난 작약 사이를 지나며 서로에게 선물할 꽃을 고르는 연인들,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버스킹 연주자와 기꺼이 환호해 주는 관객들. 그래, 그야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차고 넘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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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래, 한때는 그런 행복이 삶의 목표였던 순간이 있었어. 거창한 행복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한 감정을 챙기는 일에 매달렸던 거야.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었어. 일상이 힘들수록 나라도 나를 사랑해 주는 일이 중요한 의무처럼 느껴졌거든. 폭풍 같은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지켜’ 내면 약간의 성취감이 생겼어. 유독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올 때면 지친 몸을 이끌고 굳이 먼 거리의 빵집에 들렀지. 화려한 모양새로 SNS에서 유명세를 탄 케이크를 한 조각이나마 입에 넣어 보려고. 입안 가득 돋아난 혓바늘이 쓸려 아팠지만 어쨌든 억지로 맛을 음미해 보려고. 오늘도 나만의 작은 행복을 지켰구나, 뿌듯함을 느껴 보려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하루치의 행복을 매일 꾸준히 확보하는데도 막상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게.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도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은 꽤나 당혹스러웠어. 

암만 생각해 봐도 내가 불행할 리 없었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고,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챙기며 살고 있는 나인데! 문득 도망치고 싶다가도 ‘아냐,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나는 행복해! 그러니까 버텨야 해!’ 주문을 외우며 억지로 붙들었어. 모두들 너무 맛있다는데 막상 내게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케이크를 먹었을 때처럼. 잔뜩 올려진 크림이 혓바늘에 묻어나 너무 아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인증 사진을 남겼던 때처럼.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행복의 공식에 스스로를 가두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좋아하던 일이라도 가끔은 잠시 싫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그렇게까지 답답하지는 않았을 텐데.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꼭 매 순간이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았더라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라는 걸 알았더라면. 모두가 맛있다고 하는 케이크가 내게는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행복이라는 감정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건 생각보다 참 위험한 일이더라. 내가 현재 행복한지 아닌지 내 감정의 잣대로 끊임없이 점검하다보면 금세 지치게 돼. 찰나의 감정으로 내 삶을 평가하다보면 스스로가 그토록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는 거야. 그 아무리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매 순간을 애써 보호한다고 해도 그다지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지. 작은 불평에도, 내일의 걱정에도, 스치는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마음을 가진 나에게는 더더욱. 


뻔한 말을 그대로 따라 보려고 해. 순간의 감정보다는 방향에 집중하는 것. 옳은 방향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당장 행복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이 선언을 마음에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때 그렇게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 같아. 


마켓을 즐기는 포틀랜더들에게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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