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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May 23. 2021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20210523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문학동네시인선 152 장수양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제목을 가져왔습니다.)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이 오프라인 공간을 정리한다. 서울 관악구의 달리, 봄도 공간 문을 닫는다. 클래식책방이 생기기 전 나에게 레퍼런스가 되어 준 서점들이다. 두 곳 모두 시즌2와 온라인에서 이어질 프로젝트를 기다리겠지만 종이접기 시간이 끝나고 공들여 만든 내 작품들이 어느샌가 내 곁을 떠난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지지는 않을까 복잡한 마음이다.

  두잉을 비롯한 페미니즘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온라인 간담회가 열렸다. 두잉은 여성 영화를 보러, 독서모임을 하러 오프라인 공간에 방문하고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강좌를 몇 번 들었다. 안산에서 학교를 나와 책방 펨에 들린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있다 나왔다. 손님은 나 밖에 없었고 이소라의 CD도 종일 돌아갔다. 먼발치에서만 뵈었던 운영자분들의 목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클래식책방이라는 공간을 "페미니즘 책방"이라고 명명하지 않는다. "여성의 이야기가 고전이 되는"이라는 다소 두리뭉실한 타이틀을 달고 여성서사와 여성작가의 책을 큐레이션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당연히 지지받아야 하는 이론이지만 페미니즘을 정의 내리는 데에는 무수한 시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다른 결의 출판사가 출간한 책이 이곳에 있다는 비판은 사양하고 싶다. 이런 나의 생각은 수많은 타인의 삶을 만나고 읽으면서 흔들리고 싶고 흔들리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2021년의 페미니즘은 더 촘촘하게 비난받고 있다. 그 비난의 화살은 비난을 하는 쪽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알량함을 증명하는 듯한 호소를 받는다. 이 시대의 페미니즘 공간을 운영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이다. 오프라인 모임이었다면 참석하기를 망설였을 수도 있는데,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전에 내 안의 물음들이 많았다. 이번 자리를 통해 많은 부분이 해소가 되었다. 정확히는 불안이 해소가 되었다. 온라인 모임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적은 질문도 '잘하고 있다는 의문이 들 때, 어떻게 이 불안감을 해소하나요?'였다. 패널들은 이 질문에 해답이 있는지 오히려 되물었다. 조금 민망했지만 나는 이 자리에 있으므로 어느 정도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일단 오늘 모인 공간들과 내가 운영하는 책방은 다소 달랐다. 짧은 시간이라 곡해할 수 있지만, 알게 된 점은 이러하다. 책방을 열고 싶었고 당시(지금까지) 나의 가장 큰 관심사를 내세워 큐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것은 여성서사가 담긴 콘텐츠를 향유하는 것이다. 내재된 남성 중심의 사고를 깨끗이 씻어내고 '나'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을 투시하는 것. 그러려면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여성 작가의 책만 모아놓은 서점이 드물고, 페미니즘 코너는 책장 한 칸만 차지했으므로 선택지가 분명하고 넓은 공간이 이곳이었으면 했다. 그래도 공부는 필요하다. 두잉의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부족한 지식을 채워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렇겠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오는 동안 쌓인 경험 그 자체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다른 책방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 책방이나 도서관, 북카페와 같은 공간을 마련한 듯했다. 운영하는 주체도 개인보다는 단체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월세도 지원을 받는 곳이 있고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1인분의 몫을 나누어 낸다고 하니 1인 기업인 나의 책방과는 조금 다르다. 집단 지성이 아닌 개인의 판단으로 꾸려지는 서가와 홍보와 기획에 있어 자꾸만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불안감은 크게 해결이 되었다. 또 좋은 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것 만으로, 다음을 위해 문을 닫는 것이 책방을 운영하는 데에 동력이 된다는 패널 분의 말이 큰 힘이 되었다. 여성서사와 여성작가를 소개하고 평일은 쉬지만 그것은 다음 주말에 책방을 열게 하기 위함이라는 클래식의 초심이 생각나는 말이다.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떠날 마음이 있는데, 지역마다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패널분의 말도 다음을 생각하느라 이 공간의 소중함을 놓치는 일을 막아주었다.

  마지막에 책방 홍보겸 소감을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오늘 쓴 글의 이야기를 무척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책방을 열고 나서는 다른 책방들의 SNS 피드를 보며 비교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온라인 모임으로 재빠르게 돌려 여러 인사들을 초청해 모임을 진행하는 책방들을 보며 코로나는 핑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가던 책방에 작년에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평일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주말에는 책방을 열었으니 시간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내 책방에 부족한 점만 선명히 보일까 봐 무섭기도 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잘"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압박감에 강박적으로 이다음을 생각했다. 책방 2층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평일 저녁에도 열 수 있을 줄 알았다. 퇴근하고 나니 쉬고만 싶다. 아무렇지 않게 쉬었더니 "이사도 왔는데 주말에만 열어요?" 같은 물음을 들으면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열 수 있을 줄 알았던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고 말하면 다들 이해해주면서 왜 그렇게 묻는 건지, 이런 불평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속상하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일요일에 책방 문을 닫고 저녁 산책을 하는 시간이다. 평일 저녁에는 책방을 열지 않고 몸집이 커지고 있는 우리 고양이와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려고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페미니즘 공간 운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좋은 시간을 보냈다- 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려고 했다. 우리가 넷상에서나마 손을 잡았으니 눈이 녹을 것이다. 그런 분홍색 시집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거 잘 모르겠고 그냥 하는 거다. 가장 잘 나가지 못해도 가장 오래 버틸 것이다. 아니, 가장 오래 버티지 않아도 된다. 가장 내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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