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법을 몰라서요 #01]
안녕하세요. '왈이의 마음단련장'을 만드는 김지언이라고 합니다. 저는 쉬는 법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어서 명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로, 소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지쳐있는 분들, 더 나아가고자 끊임 없이 문제를 포착하지만 그런 면이 때론 너무 힘겨운 분들을 만날 때마다 여기에 제가 풀고 싶은 문제가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죠. 결핍이 있는 곳에 욕구가 고인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쉼 거지는 쉼이 가장 고픈 법!
<쉬는 법을 몰라서요>는 잘 쉬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은 채 '내가 뭘 좋아하지? 어떨 때 쉰다고 느끼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쉬지?' 질문하며 기록한 에세이 입니다. 어떻게 잘 쉬는지는 저도 모르지만요. 어떻게 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디서 쉼을 발견했는지, 그 과정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 마음의 방에서 '쉼'이 좀더 눈에 잘 띄는 선반에 놓이게 되기를 꿈꿉니다.
일의 일환으로 나의 마음이나 집중도를 계속해서 체크해요. 잘 쉬지 못하고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하면 그 전날, 그 전주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요. 틈틈이 생체리듬을 공부하고, 운동으로 몸을 살피고, 가설-실행-변경을 반복하며 루틴을 미묘하게 조정해요. 잘 쉬기 위해 일의 형태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실험하고요.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재미를 더해보기도 하고, 잘 쉴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나에게 끼얹어봅니다. 이어지는 퀴-즈. 저, 뭐 하는 사람일까요.
아마 직업을 써야 하는 칸이 있다면 '자영업자',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면 '스타트업 창업가'라고 쓸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좀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나누고 기록하는 일을 하거든요. 쉬는 것이 일이 된 거죠. '직업이 뭡니까?' 각 잡고 물어본다면 '쉬는 일을 합니다'만큼 정확하게 나의 일을 설명할 수는 없을 거예요.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쉬는 것이 제 일이 됐을까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저에게 쉼이란 비자발적 쉼인 경우가 많았어요.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을 잃었기 때문에 요양했던 거예요. 누워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누워있노라면 머릿속 생각 공장이 풀로 가동됐어요.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될까.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 불안감, 자책과 비난이 안개 같이 깔려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만은 뛰어다녔죠.
쉬고 있는데 쉬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나도 회복이 되지 않더라고요.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도미노 무너지듯 일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넘어졌어요. 그제야 직감적으로 쉼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고요. 역시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죠. 그때부터일까요.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쉬는지 캐묻고 다녔는데, 제가 도달한 엉뚱한 결론은 정말 잘 쉬는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거였어요. 쉬는 건 일하는 것보다 쉬운 줄 알았는데, 쉼잘러보다는 일잘러 찾기가 훨씬 쉽더라고요.
워라밸이라는 말 익숙하시죠. 일과 일 외 여집합의 균형. 삶의 일부인 일을 중심에 두고, 일과 일 아닌 것으로 우리 삶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라이프'라는 단어로 묶인 일 외의 여집합에 너무 많은 것들을 쑤셔 담아둔 게 아닌가요. 세수처럼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 집안일이나 공과금 처리 등 싫지만 꼭 해야 하는 행정적인 일들, 사이드 프로젝트로 벌인 일들, 그 외 각종 취미 생활, 큰 파이를 차지하게 되면서 따로 카테고리가 필요해진 넷플릭스 타임, 무색무미무취의 멍- 시간, 잠자기. 정말 이것들을 다 같은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나요?
어떻게 잘 일 하는지, 어떻게 잘 노는지, 그러니까 어떻게 잘 '하는'지에 대한 양적(+)인 이야기는 꾸준히 주목받아왔고, 계속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고, 나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즉각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내가 따로 애쓰지 않아도 고민하며 살아가게 되는 주제들이죠. 책, 영상 등 필요한 콘텐츠를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고요. 운이 따라준다면, 내 주변에서도 이런 조언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죠.
반면에 어떻게 잘 쉬는지, 어떻게 잘 '그만' 하는지는 내가 노력을 기울이고, 주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뾰족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아서 타인에게 방법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개인의 철저하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지죠. 쉼이 간절했던 순간에 누군가 '쉬어도 돼!' 단호하게 말해주길, 그리고 쉼이란 걸 어떻게 허락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랐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쉬는 거야 뻔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힐링, 쉼, 치유.. 정리되지 않은 키워드를 방송이나 책에서 많이 접했으니까요. 한쪽으로는 '정말 잘 쉬어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없다고?'라고 물으실지도 몰라요. 커피 한 잔이 얼마나 중요한데! 쉬려고 사는데! 하실 지도요. 쉼은 좋은 사람과의 커피 한 잔이고, 취미로 즐기는 퍼즐이며, 약손명가이고, 요가이며, 발리의 고급 리조트고, 일요일 아침의 늦잠이라고 말씀하실지도요. 음,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쉼이라는 건 대체 뭘까요?
당신에게 쉼은 무엇인가요?
저는 자꾸 저 질문 앞에서 멈춰서게 됐어요. 어쩌면 우리가 쉼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 건 아닐까요. 질문의 질문의 질문을 연이어 던지는 건, 이런 질문들에서 제 쉼 여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에요. 쉼을 안다는 전제를 살짝 지우고 호기심을 가지면서부터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점점 쉼을 지켜내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일의 모양, 디지털 환경, 콘텐츠가 합을 이루면서 좀 더 매끄럽게, 체계적으로 쉼을 방해할 게 분명하잖아요. 업무 메시지가,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새로 나온 영상이, 수많은 온라인 화상 모임이 이미 내 침대까지 침투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날 지키기 위해서 함께 쉼을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일과 일 외의 여집합이라는 두 가지 색으로 뭉툭하게 칠해진 내 일상에서 다채로운 쉼을 발라냈으면 좋겠어요. 쉼이 지닌 그 고유의 의미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찾고, 내가 왜 쉬어야 하는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기를 바래요.
후, 이렇게 썼는데 말이에요. 팍팍한 한국 땅에서,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린 시절 휴지통에 넣고 비우기까지 눌러버린 쉼이라는 기능을 다시 탑재할 수 있긴 할까요? 글을 쓰는 지금도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쩌면 잘 쉬기 위해서 쉴 구실을 찾으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이런 불순한 동기에서도 뭔가가 시작되긴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