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쉼 조각 내 손으로 줍기

[쉬는 법을 몰라서요 #05]

쉼은 매우 다양해서 중간 중간 짤막하게 끼어있는 쉼도 있고, 뭉텅이 떼어서 온전히 시간을 할애하는 쉼도 있어요. 형태(독서)는 같은데, 쉼인 것도 있고, 쉼이 아닌 것도 있고요. 쉼 안에서도 찾은 느낌은 모두 달라요. 어떤 쉼은 강인함을 느끼게 하고요. 어떤 쉼은 안도감을 느끼게 해요. 쉼마다의 기능도, 매력도 다른거죠. 쉼도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오늘은 내 쉼의 조각들을 주머니에 소중히 모으고 흙을 탈탈 털어 잘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서 새로 데려온 식물 ‘덩치’의 흔들림을 지켜보는 밤


새 식구가 생겼어요. 눅눅하고 컴컴한 날 아끼는 꽃집에 놀러갔다가 창가 명당 자리에 새로 놓인 아이가 눈에 띄더라고요. 신나게 수다 떨다 집에 돌아오는데, 선풍기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모습이 아른거렸어요. 작은 야자수 같기도 하고, 모빌 같기도 하고, 대롱대롱 걸린 공룡 뼈 같기도 하고, 바짝 펼쳐진 모습이 예쁜 고사리 같기도 하고. 궂은 날에도 연연하지 않고 흔들리는 모습이 내내 인상에 남았는데, 그건 아마도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궂은 날에도 씩씩하게 곁을 지켜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선생님 안되겠어요. 얘는 제가 데려가야겠어요!' 외쳐버렸죠, 뭐. 화분을 낑낑 이고 집에 오면서도 '빨리 가야지!'보다는 '안전하게, 조심히 데리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은 이랬는데, 하루 이틀만에 새로운 면모들을 그러내더라고요. 물을 주려고 턱- 잡았는데 표면에 가시가 잔뜩인 거예요. 게다가 살짝만 만져도 미모사처럼 오그라들어요. 뭘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지, 자신의 영역을 침범 받는 게 아주 싫은가봐요. 그런데 또 혼자 내버려두면 흔들흔들. 볕을 좋아한다고 해서 낮에는 창가에 옮겨두었어요. 거기서도 또다시 흔들흔들.


감정: 충분함, 만족감, 약간의 우울감
시간: 3분


2. 쉬는 법을 모르는 쉼 거지들을 만나 30분만에 새로운 판을 벌이면서 히히덕 거리는 오후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요. 쉼에 이렇게나 관심이 있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우리 모두 쉼 거지들 같아요. 아직 서로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도, 그들이 주는 바이브(?) 덕분일까요. 편안했어요. 누구도 '나'를 과시하거나 자그마하게 숙일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게 느껴졌거든요. '너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나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의미를 찾아주는, 따뜻한 자리였어요.


감정: 천진난만 즐거움, 활기
시간: 2시간


3. 요가의 모든 순간


요가를 하면서 명상하면서는 펼쳐보지 못했던 다른 챕터의 쉼을 알게 됐어요. 요가는 명상보다 우리 몸을 활용해서 말초적으로 쉼에 접근해간다고 느꼈거든요. 


쉼이라는 게 몸의 일이구나 비로소 알게 됐달까요. 내 머리가 쉬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 시간이 너무나 만족스러워도, 내 몸이 쉬고 있지 못하다면 그게 쉼일 수 있을까요? 우리 몸의 생체 시계, 신경계, 호르몬계 등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쉼이 완성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가는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흐름을 만들면서 깊은 이완을 끌어내도록 시퀀스가 구성되어있잖아요. 마치 마법 같아요.


감정: 효능감, 강인함, 평화로움
시간: 1시간


4. 불안과 조급함 속에 있을 때 눈을 감고 숨을 쉬며 오가는 생각들을 가만히 관찰한, 일과 일 사이의 시간들


이번 주는 사람을 만날 일이 많은데 쳐내야할 업무량도 많아서 조급하기도 했고, 앞으로 생길 변화에 두렵기도 했어요. 마음이 급하면 쉼 없이 일단 계속 뛰어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습관이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생각을 구경하기 위해서 단호하게 눈을 감고 멍상했어요. 달리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 멈춰서준 제게 고마웠어요. 그 시간 덕분에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감정: 안정감, 안도감
시간: 5-20분


5. 내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읽을 때


이번 주에는 아주 귀여운 선물이었던 1. 사물에게 배웁니다.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읽게 된 2. OKR추천+유지원 교수님이 좋아서 고른 3.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고 있어요.


보통 책을 서너권씩 돌려가며 읽는데요. 이번에는 책 세 권의 장단점이 모두 다르다보니 책을 대하는 제 마음의 태도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책은 저자와의 느긋한 대화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사람이 어떤 목소리와 태도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어려운 주제여도 아주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펼쳐드는 책마다 쉼이 다르게 놓여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그 차이를 예민하게 알아차려보면 어떨까요?


감정: 1. 귀여움. 다정~ 2. 숨 가쁨. 미리 느끼는 성취감. 헥헥. 3. 편안함. 잔재미.
시간: 1시간


닮아 있어서 속을 뻔한 조각들   

     쉼이라고 너무 믿고 싶지만, 머리가 돌아가고 몸이 이완되지 못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피하고 싶어서 넷플릭스에 매달리는 새벽

     나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뭉툭한 대화(특징: 그 순간의 감정과 나중에 남는 감정이 많이 다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