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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이의 마음단련장 Feb 14. 2021

'한심하다, 게으르다, 왜 사냐'
의 루프

[쉬는 법을 몰라서요 #08]

이번 주 처음으로 별점 3개를 받았습니다. 이게 뭐라고, 별점 3개를 악플처럼 받아들이는 저를 발견했더랬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저에게 수많은 자기혐오가 쏟아졌는데요. 이 별점으로 이 생각들이 모두 맞다고 확인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걸까. 역시 내가 게을렀나.' 잠을 자려고 누웠더니 오만 생각들이 쏟아지더군요.


자기혐오는 화살이나 칼처럼 뽀족하고 실체가 있기보다는 은근슬쩍, 스물스물 피어나는 독한 안개처럼 다가옵니다. 또렷하게 보이는 어떤 물체가 아니고요. 배경에 깔려있습니다. 모든 행동을 '옳다! 별로다!' 심판하고 재단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 내가 이런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베이징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나쁜 지역에 살았던 제 친구의 말로는 어느 시점부터는 경각심이 떨어져서 마스크도 종종 잊게 된다는군요. 자기혐오라는 것도 익숙해지면 잊게 되는 탓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저에게 쏟아내는 자기혐오적인 말들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한심하다' '게으르다' '왜 사냐'

정말 저런 말들이 또렷하게 제 귀를 때리는 경우는 잘 없고요. 어렴풋이 전달될 뿐입니다.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구나!' 명확하게 알게 되는 건 주로 누군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데, 두고 두고 곱씹게 되고 격렬하게 꿈틀거리게 될 때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나에게 유난히 아픈 말을 한 게 아니라(그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수십 번씩 하고 있었던 말이기에 무게가 실리는 겁니다.


별점 세 개가 유난히 아팠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다닐 때 '4층의 또라이'로 알려진 사람이 업무 피드백을 주다 말고 저에게 심한 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퇴근 후 그 사람이 한 말을 안주처럼 씹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털어낼 수 있는 정도, 그러니까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스크래치만 남았습니다. 모두가 알아주는 또라이였으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설탕 망치처럼 부서졌지요. 하지만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한 쓴 소리는 2주에서 몇 달까지도 이어지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속을 뒤집어놓는 기염을 토합니다. 말에 무게가 있으니까요.


내가 나에게 하는 자기혐오적 표현이 신뢰하는 동료가 던진 쓴 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요. 별다른 인사이트를 주지 못하고, 나를 오히려 정체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게 아닐까요. 안개처럼 깔려서는 이미 나에게 수없이 해온 (헛)소리의 무한 반복입니다. 꾸짖음으로 변화할 일 같으면요. 진작 바뀌었을 겁니다. 오히려 이게 내 발목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떠올려보아야 합니다. 자기혐오가 강해지면 죄책감에도 취약해집니다. 솔직히 죄책감이야말로 휘리릭 지나보내도 좋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했어야 했어'라는 끈적한 마음이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잘못 판 구멍 앞에 주저 앉고 계속 그 주위를 빙빙 돌게 만듭니다. 구멍을 아주 크고 깊게 잘못 팠다면,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흙을 털고 앞으로 가는 거예요.


자기혐오성 코멘트들을 자세히 보면 나의 핵심 가치로 이어집니다. 저의 경우, 바로 성.실.입니다. 예전에 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데요. 누구에게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가 하나쯤은 있다고 합니다. 이 항아리는 각자에게 너무 소중한 항아리이기 때문에 성에 차지 않아서 항상 더 채우려고 든대요. 그런데 각자가 자신의 항아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미 충분하게 채워져있다는 거예요. 그 항아리가 사랑이든, 자유든, 도전이든, 성취, 친절이든 말이에요. 아마 '나는 너무 이기적이야!'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이타적이고 친절한 사람일 확률이 높을 거예요.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다른 건 몰라도 성실의 항아리엔 물이 꽤 차있는 듯 합니다.


기막힌 우연으로 별 점 세 개가 달린 후기를 눌렀는데요. 그 분이 이제까지 남긴 후기 리스트가 나왔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후기 내역이 있었습니다. 들렀던 백반집부터 주유소까지, 데이터 분석을 해도 좋을만큼 끝이 없는 리스트였고, 별점이 5개인 곳은 한 군데도 없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힘을 실어 저를 판단하고, 밀어냈던지 무릎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것은 여전하지만요. 제가 이 안개들을 구태여 붙잡으려 눈물 미스트를 뿌릴 필요는 없다는 걸 잘-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런 질문을 던져드리고 싶어요.   

     나는 나를 뭐라고 평가하나요? 나를 어떤 말로 몰아세우나요? (잘 모르겠다면 나를 꿈틀대게 하는 나에 대한 코멘트를 떠올려보세요)

     그런 자기혐오적인 생각들에서 발견되는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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