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6살에 지금의 신랑이랑 결혼을 했다.
대학 1학년 때 만나 7년을 사귀다 결혼.
결혼 3년 되던 해에 큰아이로 딸을 출산하고,
큰아이와 4살 터울에 둘째 아이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으니 미련 없이 잘 살았는데,
문득문득 늦둥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 8살이던 해에 피임으로 끼고 있던 루프를 뺀 뒤, 자연스럽게 생길 막둥이를 기다렸다.
생각처럼 쉽게 가져지지 않은 아기 소식에 임신하는 꿈을 수차례 꾸기도 했었다. 그렇게 1년 반
드디어 막둥이 임신이 현실이 되었다.
내 나이 올해 마흔.
큰아이 낳았을 때 28살,
둘째 낳았을 때 32살,
막둥이는 내년 1월 출산 예정이니 그때 나이 41살.
20대와, 30대...
이젠 40대까지 육아하게 생겼구나.
임신소식에 기쁜 것은 사실이나 현실에 내 상황을 보자면 꼭 그리 좋을 일만은 아니었다.
임신 7주 차에 병원에서 확인서 받고 온 다음날부터 그놈의 입덧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울렁기는걸 시작으로 하루 종일 내 몸통은 내 몸통이 아닌 것만 같다.
무엇을 먹든지 소화하기까지가 너무 힘이 든다.
목에 매여있는 것 같고, 위에서 부풀어 가스 차는 것 같고, 장에서의 움직임도 느껴지질 않는다.
물을 마셔도 토할 때가 많아졌다.
할 줄 아는 거 많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에 일을 만들어서 하던 내가 모든 살림에서 두 손을 내려놨다.
밥솥에 밥이 4일 넘게 말라가는 건 기본이고,
간편식 사다 놓은 것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기 일쑤.
매번 배달시켜 먹는 것도 고역이 되었다.
화분이 말라비틀어지는 걸 보면서도 물 한번 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야 만다.
시간이 나면 정리하려고 밀어둔 짐들이 자꾸만 쌓여가고,
아이들의 일상도 방임 상태가 되어간다.
나란 엄만 대체 뭐지?
두 아이를 그리 잘 키웠다고 자랑할 수준이 못되는데, 이렇게 감당도 못할 늦둥이는 왜 임신한 걸까?
난 대체 어떤 준비를 했고, 어떤 마음가짐이었던 걸까?
나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해 보여 너무 슬픈 나날들의 연속이다.
입덧이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내가 기운이 없는 건 다 배 속에 아기에게 영양분을 나눠줘서 그런 거라고..
위로도 해 보지만, 그래도 생각의 끝엔 나 자신의 못남만이 남는다.
내 몸이 외계인에게 붙잡혀 있는 기분.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결정과 이해 속에 해결이 되는 것 같은 기분.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입덧은 왜 오는 건지, 아기와 내가 서로 맞지 않아서 트러블처럼 나에게 전해오는 건지 너무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내 속이 내속이 아닌 채로 속옷도 못 입고, 그저 답답하지 않으려고 내 배를 축 늘여놓아 버렸다.
임신 9주 차에 아기집은 아주 주먹만큼 작다는데 내 배만 보면 막달 임산부 마냥 커다랗게 부풀어져 있다.
이러려고 그렇게 애써 다이어트했었나 싶은 자괴감이 든다.
배에 힘을 주려다 이내 포기한다. 속만 더 뒤집히기 때문이다.
빈속에 더 울렁거림이 심한 것 같아 우유 하나 마시면 마실 때의 기분 좋음은 잠시,
목에서부터 가래가 쌓인 것처럼 깨끗이 내려가지지가 않는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여 결국 목에선 구역질이 올라온다.
온 배가 울컥울컥 파도치듯 울렁이며 내 위에 담겨있는 것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보통 3시간 전에 먹은 것들까지 다 올라오곤 한다.
수분이 없는 것을 먹었을 땐 그 됨직한 구토가 날 더욱 힘들게 한다. 목구멍이 음식물로 막히고, 위액은 위액대로 쏟아져 나와 내 속을 새까맣게 태워버린다.
한참을 구역질하다 보면 이내 기력도 다 소진돼서 화장실에 주저앉아 숨만 헐떡인다.
그러면서 눈물이 핑~ 돈다.
배도 고픈데, 먹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자꾸 울렁거리는 내 속이 너무 싫다.
힘들고 지치는데 하루 종일 외계인의 배를 빌려가진 이 기분이 날 너무 지치게 한다.
다 토해내고 잠시라도 가라 앉는면 그제야 기운 없이 잠이 들곤 한다.
늦둥이를 가진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저 받쳐주지 않는 내 몸이 한스러울 뿐.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그저 바래볼 뿐이다.
큰아이 때도, 둘째 아이 때도 내 입덧은 참 지랄 같았었다.
출산과정에서 가장 힘든 게 있었다면 그건 내 입덧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잊고 지냈던 걸까? 새삼 난 내 입덧이 너무 힘들어서 싫다.
호박 채 썰어서 따끈하게 먹고 싶지만, 그걸 해줄 수 있는 이가 없다.
미역국에 밥 말아 한 그릇 마시고 싶은데, 그걸 해줄 수 있는 이가 없다.
나이 마흔에 이리도 날 챙겨주는 이가 없다는 게 속상하고 서럽다.
첫째 때도 없었고, 둘째 때도 없었다.
막둥 이때라고 뭣이 다를까..
알면서도 그게 그렇게 한스럽고 속 이 상해 울기도 많이 했다.
동네언니들도 있고, 새어머니도 있고, 사촌 언니들도 있지만, 우리 집에 와서 호박전 붙여달란 그 한마디는 못하겠다.
속없이 지질하고, 꽉 막힌 답답함이 가득한 나이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설거지해주는 신랑이 고맙긴 하지만 딱 그만큼만 고맙다.
그 사람이 나이지 않은 이상 내 맘을 알 순 없는 일.
나이 마흔에 유치원생 마냥 엄마 타령하는 나는 속없는 울보 같다.
딱 한 달만 더 버텨보자.
그러면 한결 수월해지겠지.
나이 먹으며 하나 배운건 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
버티고 버티면 그 끝은 오는 법이니, 그 시간을 잘 버티거나 잘 이용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도 배웠다.
지혜롭게 굴기에 나는 너무나도 미약한 상태라
그제 버티는 쪽에 무게를 실어본다.
버텨본다. 오늘 하루도.
이 입덧과의 전쟁 속에 사랑하는 막둥이 생각하며..
마흔에 입덧하는 나란 사람.. 에게 오늘도 용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