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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May 12. 2022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후기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덴마크의 삶이 부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 역시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내가 32살 이었던 지난 2014년 봄, 내 삶을 통째로 바꾼 뉴스를 접하게 됐다. 바로 ‘세월호 사건’ 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무능한 정부를 탓해 보지도 못하고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던가. 보통의 삼십대 직장인처럼 살고 있었다. 서울에 상경해서 8평짜리 원룸에 살며, 아침부터 밤까지 일했다. 남부럽지 않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열심히 충성한 결과는 2년에 한번씩 집을 옮길 때마다 보증금을 천만원씩, 이천만원씩 더 올려서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고, 중간 중간 슬럼프가 찾아 올 때마다 가끔은 비싼 옷과 화장품을 사면서, 올해도 청년실업이 사상 최악이라는 뉴스를 보며 내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정신차려, 더 열심히 일해. 야근이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자. 나같은 직업 못 구해서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하는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얼마나 행운아야’


실제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새벽같이 지옥철을 뚫고 회사에 출근한 뒤 숨도 못쉬게 일해도 6시 퇴근은 불가능 했다. 그 누구도 야근하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누구도 칼퇴하지 못했다. 일을 항상 넘쳐나고 아무리 뉴스에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고 했지만 칼퇴하는 직원을 좋게 보는 상사는 없었고 칼퇴하면서 회사에서 성공하기란 불가능 했다. 회사에서 승진하지 않으면 치솟는 전세를 감당할 수 없었고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며 회사에서 원하는 인간형이 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런 내가, 나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세월호 사건’에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심적 변화였다. 현재에 대한 자각, 우리 목숨이 유한하다는 것에 대한 인지, 갑작스런 죽음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앞에 겁을 먹고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 일단 나는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는 미래 역시 행복하지 않거나 불행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이 잘 못됐을까, 내 꿈이 원래 회사원 이었을까, 꿈은 청소년기에만 꿀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다시 꿈 꿀 수 있는 걸까. 나는 바로 사표를 내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떠나서 1년을 살았다. 영어공부 한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에서는 생각하지도 않을 기상천외한 일에 도전했다. 아일랜드 드라마 엑스트라, 한인방송 라디오 DJ, 기네스공장 홍보대사 등을 하며 아일랜드에 사는 한 여행자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남편이 퇴근하여 아내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삶. 그러나 어느날 더블린의 한 카페에서 수요일마다 창작시를 발표하는 모임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덴마크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관심을 보였다.

“Too much competition in Korea, right?” (한국은 경쟁이 치열하죠?)

“Yeah, indeed.” (그럼, 정말 그렇지)

소방서에서 함께 일한다는 그 부부는 덴마크는 커피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자 역시 법적인 출산휴가를 보장받는 다며 소득의 40%이상을 세금으로 국가에서 거둬들여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노후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국가에서 지켜줄 거라는 당연한 믿음, 그리고 얼굴에서 쏟아지는 자신감과 여유에 나는 부럽다 못해 화가 났다. 함께 지내고 있던 아일랜드의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노부부에게 덴마크 이야기를 전달하자 덴마크의 복지제도는 유럽에서도 닮고 싶은 모델이라고 했다.

우리는 왜 너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늘 인생이 불안하고, 노후 보장은 1도 없으며 모두가 나락을 향해 내달리는 설국열차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안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을 왜 방치만 하는 걸까?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무력했다. 그 날 나는 친구와 화상으로 통화하며 “다음생에 태어나면 피터지게 경쟁해야 상위 10%내로 살 수 있는, 그렇게 살아도 행복하지 않는 한국이 아니라 덴마크 같은 북유럽에서 ‘알바하는 삶을 살래!’라고 부르짖었다.


그렇게 사람처럼 살아본 뒤, 비자 문제로 1년 반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 사이에 소득격차는 더 커졌으며 더 살기 팍팍해 졌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한 글 공모전에서 죄다 떨어지고 한국에서도 몇 달 더 버텼지만 소득이 없자 다시 예전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올 2월에 만난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한동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독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에프터스콜레”의 변형으로 직장인에게도 중간 중간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은 쉼표”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회사생활이 맞지 않은 사람인데, 회사 외에 먹고 살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숨을 죄여왔다. 내가 지금 작가가 되려 한들, 그림이 그리고 싶다고 한들, 삶의 방향이 바꿀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뭘 해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이가 30대 중반인 결혼도 안 한 딸이 4년전 그렇게 꿈툴대도 달라 진게 없었는데 다시 시작해도 될까? 라는 의심 가득한 마음에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서 무한경쟁에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꿈을 잃은 동태눈빛의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잃지 않은 어른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대한민국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를 우리는 현재 누리면서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 우리는 왜 저항하지 않고, 적극적인 권리주장을 하지 못하며 박탈된 사회속에서 이 말도 안되는 승자가 모든 걸 다 갖는 (The winner takes it all)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걸까.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길을 찾아야 하는게 정도(正道)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책, 그래서 나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거창한게 아니라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제일 먼저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도시 서울에서 빠져나와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글을쓰기 시작했다. 돈이 떨어지면 아이들을 모아 과외를 하고, 하루종일 글을 쓰고 산책을 한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고 가슴뛰는 일에 뛰어들자 당장 제대로된 수입이 없어도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는 없이 하루를 소박하게 행복하게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들처럼 사는 것에 관심이 없어지고 내가 오롯이 나답게 사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쟁이 아니라 다 함께 잘 사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의 바탕은 인류애적인 사랑이다. ‘나만 잘살고 보자’라는 식으로 함께 불행할 게 아니라 덴마크처럼 정답이 없는 교육, 정답이 없는 삶, 모든게 정답일 수 있는 다양성을 제시할 때 우리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설국열차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혼자 트랙에서 빠져나와 헛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씻어준 고마운 책을 집필해 주신 오연호 작가님에게 나의 꿈틀거림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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