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부른다는 역설에 관하여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은 그 말의 주인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발화 이후에 나타날 현상에 대하여, 시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인과율에 대하여.
히브리 성서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단호한 이 명령은 그가 어떤 존재인가, 와 관계있다. 만약 누군가 신을 부른다면,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나타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신의 그 무엇이 바라던 모습과 많이 다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신은, 만약 그가 원한다면, 그가 존재하는 방식대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것이 히브리 성서가 말하는 준엄한 경고이다.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나는 매 번 빠르게 달아나버리는 과거를 볼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달라붙어 '나'가 되는 과거를 본다. 발화자는 그의 말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발화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내뻗지만 과거로 퇴행하는, 곧 생물을 화석으로 만드는 운명적 행위이다.
그러나 신에게 요청하는 행위는 다르다. 이것은 생명, 곧 살았던 자와 살아있는 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다. 미래를 만드는 유일한 말이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지나쳐가 버릴지 모르는 무언가를 잡겠다는 의미다. 말을 현재를 담는 그릇으로 삼아 지금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의지다.
하여 인간의 말은 재차 책임을 부여하는 기이한 기능을 수행한다. 붙잡은 시간을, 그리고 그 붙잡은 행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자문자답하게 하여 삶을 어지럽게 한다.
만약 신을 부를 거라면 그 정도 각오가 필요하다. 어떤 자세나 조건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가 올 미래와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은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오늘이라는 현실로 나와 싸운다. 나의 삶을 저주하며 운명을 거부하는 소리를 지를 거라면 과거로 흘러 가버릴 것들과 씨름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일은 신이 건 싸움에 나서는 것과 같다. 내가 겪는 아픔에 관하여, 삶을 애증 하도록 이끄는 모든 것에 관하여, 타인을 환대와 경멸로 반복하여 바라보게 만드는 사건들에 관하여, 그리고 알 수 없는 향수병을 유발하는 모든 망각에 관하여.
결국 삶은 역설이다. 신은 그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