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연대

상상과 기억 사이로 걸어가기

by 쓴쓴

내가 아는 세상은 아직 충분히, 인간의 신음소리에서 의미를 읽어내질 못한다. 들어도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소리라는 사실조차 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람의 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이는 언제까지나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울음이 온 세상과 공명하여 큰 소리로 울릴지라도 알아차리는 존재는 결국, 사람이 유일하다.


그런데 여기에 비극이 있다. 내가 보는 상대가 언제나 내 맘 같지 않다는 현실 말이다. 이것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확신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더불어 살기란 진퇴의 무한한 반복임을 깨닫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나'라는 개인은 타인에게 영원히 알려지지 못할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는 너의, 혹은 너는 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너의 눈물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없고, 나의 아픔이 너의 눈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결국 혼자로 남아야 하는가.




여기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상흔을 가진 이가 산다. 한 사람은 이제 시작된 아픔을, 다른 사람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아픔을 '안다'. 이 고통들은 물론, 동일하지 않고 같아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사성, 곧 나약한 육체와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너'의 아픔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위로가 있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가 가끔은 내 맘을 알아준다는 믿기 어려운 낭만이다. 이것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공감이 나오고, 함께 살기란 상상력과 기억의 협력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타인'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픈 존재라는 발견이다.


이곳에 사람이 있다면, 이곳을 저곳이라 부를 사람이 저곳에 있다. 상처에 아파하고 고통에 탄식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보통의 인간들이 살아간다. 만약 당신이 아픔을 경험했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일하다면, 함께 있어 아픈 이를 혼자 두지 않는 것으로 공감의 연대를 표현하는 일이며, 곧 세상이 사람의 소리를 알아차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