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빠? 엄마가 딸 좋아하는 열무김치 했는데, 이번 주말엔 집에 올 수 있나?"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나의 치명적 약점을 파고들어 쌍문동 본가로 유인하는 엄마의 필살기, 집밥. 대학 때부터 자취를 시작해, 근 20년 혼밥 중인 내게 엄마의 손맛은 그리움이고,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게다가 열무라니!!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슥슥 비벼도 맛있고, 탱탱하게 삶은 소면을 말아먹어도 맛있는 열무김치! 그것도 요리왕으로 소문난 쌍문동 장여사의 김치이니 나는 꼼짝없이 답한다. “응 엄마, 갈게”
쌍문동 장여사.
식당 손님들은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장여사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연애하던 남자와 아이를 가졌고, 반대하는 부모 대신 뱃속의 아이를 선택했다. 두 사람은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가난했다. 하지만 그 사정을 알리 없는 뱃속의 아이는 남다른 머리 크기로 제왕절개를 해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어린 아빠는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다시 부모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탯줄이 끊어지던 날, 나의 부모는 자신들의 부모와 끊어진 연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어린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쌍문동 장여사는 밥장사를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는 늘 매콤한 찌개 냄새가 났다. 장여사의 주특기는 순두부찌개였는데, 밀물처럼 몰려들었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뜨거운 기름에 고춧가루를 달달 볶아 찌개에 들어갈 고추기름을 만들었다. 그럼 나는 매쾌한 냄새를 피해 퀙퀙거리며 식당을 빠져나와 놀이터로, 야산으로, 해질 무렵까지 뛰어놀다 “은주야~ 밥 먹어라!!!!” 저녁노을 위로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이 놈의 기지배! 어딜 그렇게 만날 들개 새끼처럼 돌아다녀” 등짝을 내리치던 장여사의 손맛은 순두부찌개처럼 매콤해 찔금 눈물이 났다.
중국산 김치 따위는 몰랐던 그 시절, 김장철이면 식당 앞 골목길엔 파란 비닐 포장이 깔렸다. 그 위로 산처럼 쌓였던 포기배추들. 커다란 트럭 가득 실려온 배추들이 폭삭 소금에 절여졌다 씻겨지고 나면, 골고루 양념 옷을 입힐 차례. 빨간 고무대야가 맛깔난 젓갈 냄새를 풍기며 등장하면, 동네 아이들은 쪼로로로록 무채 가득한 양념통 앞으로 모여들었고,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 수육도 날아들었다. 그럼 엄마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노란 배추 꼬다리에 양념 속을 돌돌 말아 수육 한 점을 우리 입에 넣어주기 바빴는데.. 그때 그 참새 같던 아이들은 엄마들의 고소했던 손맛을 아직 기억할까? 요즘은 어느 유명 맛집 앞에서 쪼로록 줄을 서고 있진 않을까?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한 뒤로는 입에 쓴 맛 도는 날이 많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쓴 듯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했다. 투명한 유리병처럼 살고팠던 나는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주 깨지고 터졌는데, 너무 심하게 깨지고 치인 날은,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나의 시작점, 엄마품으로 숨어들었다. 그럼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온기 가득한 밥상을 내어주셨고, 그 밥을 아기새처럼 받아먹은 난,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나처럼 응석 부릴 수 있는 엄마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후로 한참 뒤였다.
내가 겪은 시련의 몇 곱을 이겨내고도, 내 작은 상처에 아파서 우는 사람. 그래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먹먹한 위로다.
“니네 없으면, 엄만 그냥 빵 먹어”
비 오는 날엔 칼칼한 김치 콩나물국, 여름철 무더위엔 아삭한 노각 무침, 할머니가 생각나는 날엔 푹 익힌 가지나물, 출출한 밤엔 새콤달콤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고 주문하는 식구들 말에 뚝딱뚝딱 순식간에 밥상을 차려내는 엄마는 요리사를 넘어 마술사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구들은 집보다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식당을 정리한 엄마는 혼자 집을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시간 끝에 엄마가 고백한 한 마디. “난 빵 좋아해. 쉬림프 피자가 세상에서 젤 맛있어” 당황스러웠다. 엄마에게 요리는 당연한 취미이자 삶의 기쁨인 줄 알았는데... 장여사는 혼자 먹을 밥상을 차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라고도 했다.
맛있게 먹어주는 이가 있어야 요리가 즐겁다는 당연한 사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장여사 집밥의 원동력이라는 걸, 왜 난 미처 몰랐을까. 하긴 엄마의 소울푸드가 쉬림프 피자라는 것도 몰랐으니, 못난 딸은 잘 먹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엄마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요리를 제법 한다는 사실. 자취 경력 20년에 그동안 맛집은 또 얼마나 다녔는가. 뛰어난 맛은 못 내도 속도는 빠르다. 식당 하던 엄마를 닮아 손도 크다. 하지만 엄마는 모른다. 내가 하는 유일한 효도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달라고 엄마를 조르는 것이기에, 쌍문동 장여사는 늙은 딸이 만날 굶고 다니는 줄 아신다. 나 역시 딸이 잘 먹는 반찬을 미끼 삼아 본가로 딸을 낚아 올리는 장여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엄마는 영원한 나의 요리사, 맛의 첫사랑, 최고의 낚시꾼.
“딸~ 더 먹어! 이 볶음탕엔 엄마가 설탕 대신 토마토를 넣어서 많이 먹어도 살 안 쪄~”
“아들~ 만두 맛있지? 아들이 채소를 하도 안 먹어서 엄마가 만두 속에 잔뜩 넣었는데, 잘 먹네!ㅎㅎ”
“여보~ 오늘은 아로니아 밥이야~ 이 아로니아가 노화도 방지해주고, 눈도 맑게 해준대요, 당신은 진짜 내 덕에 회춘하시네”
정성껏 차려낸 밥상을 미끼로 오늘도 식구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낚싯대를 드리우는 엄마, 집밥은 우리 식구를 지켜온 힘이자 엄마의 삶이란 걸 알기에, 우린 오늘도 엄마가 던지는 달콤한 미끼를 한입 가득 안아 문다. 짜릿한 손맛에 장여사가 웃는다. 둘러앉은 밥상이 따뜻하다. 그래, 인생은 맛있고, 우린 이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