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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0대 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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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A Aug 21. 2019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세상 모든 담쟁이들 힘내

내가 뭐 그렇지..


하는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운동한다고 끊어놓고 안 간 회원권, 새해마다 샀던 다이어리, 엄마 환갑 선물하겠다며 야심 차게 시작했던 브런치...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질러놓고 쉬이 포기했다. 한때는 합리화도 잘했는데 이제는 나이 좀 먹었다고 염치가 생겼는지 ‘내가 뭐 그렇지’ 하며 자책할 때가 많다. 그리고 없다.


뭐 하나 꾸준히...


하고 싶은 게 없다. 한때는 이거 저거 찔러보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의욕조차 없다. 의욕이 없으니 벌리는 일이 없고, 벌리는 재미가 없으니 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노잼 개미지옥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오늘 회사에서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한 선배가 일방적으로 던진 말이긴 한데, 덕질로 성공한 동료와 날 비교하면서, 날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스카이 캐슬’과 ‘청취율’ 뿐이라나. 내가 유일하게 열변을 토했던 게 그 두 개뿐이라며 내가 꾸준히 파고 있는 취미나 취향 없음을 놀리듯 말하는데, 아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왜냐, 난 원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떠드는 사람 질색이고(둘 다 내 관심사 전혀 아니란 얘기) 둘째로, 친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바로 정정하지 못한 게 분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취향없는 사람이라는 걸 들켜서?!!


뭐라도


다시 해야겠다. 안 그래도 간질간질 심심하던 차였다. 한동안 너무 쉬었지 싶었다. 뭐하나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시작도 말자 했는데, 하다 말면 어떻고, 제대로 못하면 또 어떤가. 사주팔자 좀 본다는 언니가 그러드만. 내 성질이 나무인데, 나무가 원래 두 종류라고. 몇 년을 착실하게 자라서 꾸준히 과실을 맺는 유실수가 있는가하면, 나처럼 하루하루 그 날만 살아가는 담쟁이, 상추 같은 나무도 있다고. 그러니까 (이게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한길 꾸준히 파서 성공하는 덕질 외길인생도 있지만, 여기저기 호기심으로 치고 빠지는 팔랑귀 인생도 재밌을 수 있다는 얘기. 담쟁이로 태어났으면, 사과나무 배나무 쳐다보면서 ‘열매도 못 맺는 나는 죽어야지’할 게 아니라, 뭐라도 재밌어 보이는 거 타고 올라가며 하루하루 ‘살아내야’ 할 게 아닌가. 그게 내 리듬이고, 루틴이지 싶다.



기록해야지.


여기저기 타고 다니는 그 모든 순간들을 브런치에 수시로 기록해야지. 그래서 언젠가 누가 또 꼰대 같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할 때 내 자존감의 근거로 펼쳐야지, 스쳐가는 무례함들에 쉬이 상처받거나 휘청이지 않도록, 내 기록으로 내가 날 지켜야지. 남들보기 그럴듯한 결과물을 위해 조바심 치거나 버거움에 중도 포기하지말고, 순간순간 내가 즐길 수 있는 담벼락을 찾아서 나만의 담쟁이 취향을 완성해야지.


나는 뭐 그런 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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