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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A Aug 30. 2019

고수의 맛

둥둥 둥둥 떠내려가라


고수를 싫어한 적이 있다.


배우 고수씨 말고 향이 나는 허브잎 중 하나인 고수. 씹으면 화장품 맛이 나는 그걸 왜들 그렇게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놈은 이름답게 향신료 계의 ‘고수’라서 작은 쪼가리 하나만 스치고 가도, 강한 향이 남았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모두 폐허.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쌀국수에 넣어먹으면 맛있다, 샐러드랑 곁들여 먹으면 풍미가 좋다, 고수씨 팬들이 아무리 유혹해도 싫었다. 이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싫은 맛.


사람 사이도 그랬다.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해도 나는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 다들 하나씩은 있지 않나. 나만 쓰레긴가. 모두가 그의 허물에 대해 너그럽게 넘어갈 때, 나는 고수의 작은 쪼가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후각처럼 온몸이 뾰족해졌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 사소한 말투 하나에도 영혼이 갈갈이 찢길 듯 짜증이 나서 꼴도 보기 싫고, 말도 섞기 싫고, 가능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데, 인생은 짖궂어서 그러면 그럴수록 늘 더 엮이곤 했다. (운명의 신아, 재밌니?? ㅜㅜ)


게다가 식탁에서 만나는 고수씨는 빼달라, 안 먹겠다, 할 수라도 있지만,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그게 어렵다. 특히 일로 엮인 관계는 그럴 수가 없어 미친다. 참는다고 익숙해진다면 약 먹는 셈치고 견디겠지만,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대체로 입에도 쓰고 몸에도 해로웠다. 참을수록 내 안에서 독이 되는 기분이랄까.


시시비비가 명확할 땐 차라리 낫다. 아무리 일로 엮인 사이라도, 제아무리 상하 위계가 강한 일터라도,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을 각오로 싸우면 이긴다 하지 않는가. 시시비비가 명확할 , 덤볐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로 조용히 소리없이 사라져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힘들다고 대안도 없이 사표를 던지는 날엔 빼박, 나만 손해, ‘주름이 늘수록 기회는 줄어든다 어느 드라마 명대사를 기억해야 한다. 손해보지 말고 “여기 똥이 있다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에 신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나를 포함 선량한 피해자들의 영혼에  묻는 일을 막고,  2,  3  출현을 막아, 세상이 똥밭되는  막아야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대체로 애매하다. 싫은 이유도,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애매해서 성가시다. 교묘하게 은근하게 짜증을 유발한다.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짓들을 하지만 따지기는 차암 애매한.. 미필적 고의를 즐기는 지능범들이다.


해맑게 웃으며 사람 속을 뒤집는 빙그레 썅것부터, 말로만 일하는 얍실이, 뭐든 요란하게 ‘-척’하는 빈 수레, 남의 말을 자기 편의대로 옮기는 촉새, 그냥 대놓고 이기적인 철면피 등등


대체로 이런 류의 인간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최악이다. 그럴싸한 말로 자신을 포장해, 타인의 공로를 가로채거나 본인의 실수를 교묘하게 덮기도 잘 한다. 한 마디로 엮이는 순간, 호구 되기 십상이다.


최근에 내가 경험한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팀의 성과로 받은 인센티브를 자기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그는 자기 포장과 처세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의 게으름을 지적하면 그는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며 ‘난 운이 좋은 편’이란 말로 빠져나가곤 했다. 그 말이 사실이면 참 좋으련만, 그가 말하는 ‘운’은 그와 같이 일하는 팀원들의 숨은 노력이고, 헌신인 걸, 그만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뭘 어쩌겠나. 팀의 성과로 받은 인센티브지만, ‘고맙다, 덕분이다’ 인사를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일 뿐, 받았다는 말조차 안 하고 넘어가는 게, 그의 상식이었다.  


절대로 니가 싫어하는 사람을 보며
엿 먹이려고 부들부들 하지 말고,

강가에서 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낚시질이나 콧노래를 불러라.

그럼 네 적이 죽어서
둥둥 떠내려올거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때문에, 내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고, 어느 날, 이 글이 나에게 와주었다. 중국 명언이라는데, 어디서 온 글이든 간에, 아무래도 싫은 누군가 때문에 더이상 손해보지 않도록 나를 구해준 글. 욕 하다가 닮는다는 말이 있으니 욕도 아깝다. 그냥 떠내려보내기로 했다.

 

둥둥 떠내려가라.

너와의 안 좋은 기억.

둥둥 몽땅 떠내려가라.

너로 인해 썩은 내 안에 모든 안 좋은 기운.




나는 요즘 고수씨를 사랑한다.


몇 년 전, 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태국 치앙마이, 어느 호텔 부페에서 액상 소스로 만난 고수씨가 내 입맛을 바꿔놨다. 화장품 같기만 했던 특유의 맛과 향이 라임즙과 섞이니 달콤하면서도 상큼했고, 해산물을 찍어 먹으니 비릿했던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고수씨가 좋아졌다. 예민했던 입맛은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가고, 이젠 어딜가나 고수씨를 찾는다.



인간 관계도 식탁에서처럼 선택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겐 나 스스로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이 필요하다. 고수씨가 싫을 때, 억지로 먹을 이유가 없었고, 그 맛이 궁금할 때,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싫은 음식 앞에서 “빼주세요, 안 먹어요” 하듯, 아무래도 싫은 사람한테 “꺼지세요, 상종 안해요” 앞 뒤 안 가리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 시원할까. 하지만 그럴 수 없고, 그러지못해 힘든 사회생활, 인간관계. 그래서 이해와 용서는 더 어렵고, 내 마음만 이렇게 어지러운 게 아닐까.


우리, 강가로 가자.


가서 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기자. 낚시도 하고 콧노래도 부르며 우리의 삶을 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둥둥. 떠내려올지도 모르지. 적의 시체.

혹시 안 내려와도 뭐 어때, 그러거나 말거나 둥둥. 아무래도 싫은 건, 잠시 접어놓고, 즐겁고 반짝이는 것들로 시간을 채우자, 삶을 만끽하자.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P.S. 제가 태국에서 맛 본 고수 드레싱 이름을 아시는 분을 찾습니다. 해산물과 먹으니 찰떡이었는데 당췌 이름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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