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샴푸 먼저 해드릴게요”
미용실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이다.
가만히 누워서 두피마사지와 함께
뽀송뽀송 샴푸질에
트리트먼트까지 받고 있노라면
내가 뭐라도 된 양 vvip가 된 기분이 든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머리카락 사이로 적당한 온도의 물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물 온도 어떠세요?”
오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이의 목소리.
미용실 막내 디자이너의 악력과 센스,
손끝의 야무짐에 따라
오늘 내가 받게 될 서비스의 질이 결정된다.
향기만으로도 긴장이 풀리는 듯한
아로마 계열의 샴푸로 거품을 내며
그녀가 나에게 두번째 질문을 던진다.
“이 정도 세기, 괜찮으세요?”
야무진 악력으로 그녀가 나의 두피를 거머쥘 때,
나는 순간적으로 발가락 끝을 돌돌 말면서
잠시 긴장하지만,
이내 모공 사이사이를 박박 문지르는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손길에
온 몸이 편안해지면서,
‘으~ 시원허다!!!’
평소 있는지도 몰랐던 두피와 모공 구멍구멍에서
시원하게 때가 빠져나가는 청량감을 느낀다.
운이 좋으면
꽉 뭉친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분을 만나기도 하고,
사교성 좋은 디자이너는
요즘 자기 삶의 기쁨과 슬픔,
애인이나 원장님 뒷담화,
오고가는 손님들에게서 배운 유행어나
재밌는 일화(aka 미용실 찌라시) 등을
쉴새없이 나눠주니 누워서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샴푸실 서비스가 절정에 다다를 때쯤,
원치 않는 마지막 질문을 듣게 된다.
“더 헹구고 싶은 곳은 없으세요?”
흑 너무 아쉬워.
황홀한 순간의 엔딩을 원치 않는 나는,
괜히 여기저기 더 헹궈달라,
이왕이면 처음부터 다시- 박박-
우리 좋았던 샴푸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
주접도 떨고 싶지만,
수치심을 아는 내 마지막 이성의 끈이
‘아니오, 감사합니다’ 라는 상식적인 답을 내놓으면,
“이제 커트자리로 이동하실 게요”
라는 안내멘트와 함께,
미용실 샴푸실의 행복 모먼트는 끝이 난다.
그러고보면...
‘질문’을 받는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일방적으로
지 말만 쏟아놓기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나의 두피에,
한 줄기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는 미용실 샴푸실,
오늘 새삼
그 향기롭고 세심한 질문들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