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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Dec 17. 2020

프리랜서 (잔)혹사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강산이 한 번 변했다.


그동안 나는 방송인 지망생이었다가 보험회사 사무를 보기도 했다가 여행 가이드이기도 했고, 라디오 리포터, 라디오 DJ, 진로 강사, 라이프 코치 등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하기도 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 직업들을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계약 관계가 프리랜서였다는 것이다.

내가 프리랜서가 되어서 가장 좋은 것은 일의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고, 일하는 만큼 보상이 된다는 것. 그 점들 때문에 프리랜서가 좋았다. 아니, 그런 것만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 좋은 점들에 발목을 잡히기 전까지 말이다.


기본급이 없는 일이다 보니 일하는 만큼만 내 수입이 생긴다는 말이 된다. 내가 아프거나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 그만큼 줄어드는 수입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 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어떨 때는 반대로 일을 좀 적게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관계를 잘 유지해두어야 다른 일도 같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공의 마음으로 노를 열심히 저을 때도 많았다.


마음껏 아프거나 여행을 가기도 힘들었다. 휴가도, 연차도, 병가도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없으니 내 일을 대체할 사람을 구해놓은 다음에야 아플 수 있고, 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월급루팡은 차치하고, 팀플의 프리라이더마저 부러울 지경이었다.


'아, 나도 좀 묻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나의 프리랜서사(史)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의미를 찾아준다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드는 10년을 보냈다는 것을 꼽겠다.

시사프로그램 취재를 할 때는 아이템 선정부터 섭외, 현장 녹음, 편집, 원고 작성, 스튜디오 출연까지 전 과정을 맡았다. 라디오 DJ를 했던 방송사는 작가, 피디, 진행자, 오퍼레이터(음악을 틀거나 볼륨 조절 등 콘솔을 담당하는 역할) 역할을 모두 나 혼자 맡야 했다.


그뿐인가. 강의를 할 때 누가 강의안을  건네줘도 그대로 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이거나 내용을 바꾸고 팩트체크를 했다.


어느 날은 한 번에 방송 준비와 강의 준비를 하느라 녹초가 되어서 '나는 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아주 슬픈 눈을 하고 마른 수건을 비틀어대듯이 억지로 남은 힘을 짜내서 준비를 끝내고 방송과 강의를 한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나고, 에너지가 더 채워지기까지 한다. 내가 만족스러운 방송과 강의를 만들어내고야 말면 언제나 그랬다.


방송이든 강의든, 프리랜서는 선택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 될 때가 많다. 물 밑에서 은근히 이루어지는 작업을 목격하는 경우도 보았고, 대놓고 무시를 당할 때도 있었지만

참 다행인 것은 나 혼자서 하는 고군분투를 누군가는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피디, 청취자, 수강생, 동료의 작은 칭찬 한마디면 그것만 한 보약이 없다. 물론 다른 일의 소개 이어지는 것은 삼에 버금가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방송국에 속해있어야, 방송인이어야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나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 등등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방송인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몇 년 사이에 방송 환경이 너무도 급변하고 있기도 하고.


이제는 '나' 중심이 아닌, 내 콘텐츠가 좋은 방송이 되는 작은 그림을 그린다. 번 한 달은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들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한 달 후에 나는 어떤 큰 그림을 보게 될까?


아... 그러고 보니 이번 계획도 내 삶에 슥 묻어가는 프리라이더로 지내기는 글렀다 싶다. 여전히 혹사가 예정되어 있지만 내 것을 만들 생각에 조금 더 설레는 밤이다.


아마 난 평생 이렇게 셀프 혹사하면서 설레고, 즐거워하겠지. 방금 얼핏 그려본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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