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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Dec 21. 2020

잘못된 만남, 에너지 뱀파이어vs예민러

톡만 주고받아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만 해도 내 기운이 쭉 빠지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이야기해도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

상대방의 의욕도, 활력도 싸악~ 흡수해버리는 것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에너지 뱀파이어라고 표현한단다.


표현이 참 재미있고 무섭다.

뱀파이어라니...


물론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에게는 에너지 뱀파이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에너지 뱀파이어의 아주 무서운 면을 경험한 후로는 내가 가진 예민한 감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마음에 새기려고 한다.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빛을 발하기를 바랄 뿐이다.


20대 중반, 병아리 티를 채 벗지 못한 사회인. 원하던 직장에서,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진짜 병아리라도 된 것처럼 생기가 넘쳤었다.


하지만 병아리 시절을 즐길 겨를도 없이 나는 바로 알을 낳는 닭이 되어야 했다.

제대로 된 교육 기간을 가질 새도 없이 바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오늘의 취재가 제대로 됐는지, 안됐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오늘 방송이 만족스러웠는지 아닌지 모니터 할 겨를도 없이 일을 '쳐냈다'. 선배들 역시 너무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동향이었던 선배가 나와 동기를 꽤 신경 써주었다.


선배라는 말이 붙은 이상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야. 사투리 좀 쓰지 마. 공중파 방송사에서 일한다면서 사투리를 쓰냐?"

고향이 같은 동기와 편하게 사투리로 이야기라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말들이 있었고,

"너희는 내가 만만하지? 당장 회사 들어와." 그다지 화 낼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새된 목소리로 우리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너희 평판이 진짜 안 좋아. 너희 때문에 일이 없어질 수도 있어." "어떤 피디가 너에 대해서..." 등 나와 동기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은 모두 그 선배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입사하고 1년까지는 너무 부족하기도 했고, 욕심도 넘쳐서 그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아팠지만 잘 소화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나의 한계는 1년이었나 보다.


내가 편하게 하는 말에 묻어나는 사투리로 사사건건 스트레스를 받으니 내가 하는 말을 자꾸 검열하게 되고,

내가 말을 하면 정말 없어 보일까 봐 말을 하기가 싫어졌다. 피디들과 일을 하다가도 뭔가 의견이 안 맞으면 나에 대해서 평가했다던 사람이 이 사람인가.. 싶어 주눅 들었다. 일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프리랜서의 생리인데도 그때는 일이 없어지면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즈음 나는 깊은 우울감과 대상포진을 얻었다. 몸과 마음이 깊게 병들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고 눈 뜨니까 사는 사람처럼 지냈다.


나중에 알게 된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특징은 이랬다.


1.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부정적인 방법으로 전달한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로 포장한 부정적인 에너지는 상대방을 좀먹는다.


2. 일부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의 잘못된 표현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부적 강화가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크다.


3. 널 위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한다~라는 생색을 낸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한 다기보다는 남을 돕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남을 위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생색을 내는 일이 흔하지는 않을 것.


4. 나르시시스트이다.


그 선배 역시 이런 특성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에너지 뱀파이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친 발버둥은 이랬다.


1. 우선 나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사투리를 써도 나는 나고,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어떻게 하면 될지 물어보고 고쳐나가면 된다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바꿔갔다.


2. 가능한 한 마주칠 일을 줄인다.


3. 마주치게 되거나 연락을 하게 되더라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질문을 하지 않고 끊어낸다.


회사라는 특성상 나는 에너지 뱀파이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얼굴을 보거나 마주치면 자꾸 힘든 마음이 들었다. 자꾸 접촉을 해도 위의 노력들을 흔들림 없이 이어나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여유가 필요했다.


덕분에 지금은 그녀가 연락을 해와도 적당히 받아서 끊을 수 있고,

요즘은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며 조금은 위로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주디스 올로프의 책 '나는 초민감자입니다'에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의심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 나와있다.


1. 피곤해서 자러 가고 싶다.
2. 갑자기 기분이 지독하게 나빠졌다.
3. 몸이 아프다.
4. 남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5. 기운을 내려고 설탕이나 탄수화물을 찾고 있다.
6. 나 자신에게 의구심이 들고 자아비판을 하게 된다.
7. 불안하고 화가 나거나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부정적인 기분이 든다.
8. 매우 수치스러우며 조종당하거나 비난받은 기분이다.
(p.146)


에너지 뱀파이어와의 조우 자체가 잘못된 만남은 아니지만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잘못된 만남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이들도 참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끝까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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