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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Dec 23. 2020

꽃꽂이와 클래식만 태교인가요?

21세기의 태교는 달라야한다

지방만 가득했던 내 배에 심장이 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내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기와 함께 하고 있었던 테니스 레슨을 정리해야 했고, 두 달 뒤 영국에서 있을 친구 결혼식 참석 겸 윔블던 견학 일정 역시 정리대상이었다.

그러나 한 달 뒤에 예정된 내 최. 애의 콘서트!!!
콘서트는 어떡하지!!!!!!! 임신 초기인데 대중교통으로 서울까지 가는 것이 괜찮을까, 콘서트장이 너무 시끄럽고 폭죽이라도 터트리면? 안 그래도 유리심장인 내가 기절하지는 않을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임산부가 콘서트...라니? 괜찮은 건가?

주변에서 더 성화였다. 혹시나... 아직 초기인데... 하는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원에서는 피고임이나 다른 위험 요소들이 없어서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고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래!!! 내가 행복한 것이 아기한테도 행복한 일이지!!'

정말 갔다!!! 두시간 생방송까지 마치고.

당시에 두 시간짜리 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방송이 끝나는 시간이 공연 시작시간이었다.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을 이동해서 남은 공연을 한 시간만 보더라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와아아ㅏ아아ㅏㄱ!!!!"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함성소리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미리 준비했던 귀마개를 착용하고 공연장에 퍼지는 기분 좋은 진동, 멤버들의 에너지, 팬들의 열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기 낳고는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확신하기가 어려워서 1분 1초를 더 소중하게 즐겼다.


공연이 끝나고 앞 뒤 옆 팬들에게 준비한 간식을 나눠주고 인사를 하는데 옆 자리 팬이 가방에 달려있던 임산부 배지를 본 모양이다.

"(배지를 가리키며) 헉, 진짜예요????? 애기랑??"
"(수줍...)네..."
"와 진짜 대박... 이것보다 좋은 태교가 어딨어요 엉엉"
"맞아요 너무 좋았어요 엉엉"


그래. 내가 행복한 일이 아기가 행복한 일이지!

임신 초반에 가진 이 확신은 출산날까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교가 뭐지?


20대에 막연히 생각했던 태교는 '조신함'이었다.

우아하고 조용하게 배를 쓰다듬으면서... 드라마의 영향이 컸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혼생활과 출산을 염두에 두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배에서부터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만들어주고 태어난 후에도 그 영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태교라면 우아하거나 조용하지 않아도 엄마 마음이 편안한 것이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생각의 끝에서 임신 기간 동안 나는 태교를 위한 특별한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임신기간 동안 정신적으로 가장 살찌워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를 돌아보았다. 또 어느 때에는 내 커리어에 대한 계획을 정리했다.


사실 출산 이후의 커리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한 것은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그런 준비가 필요했던 것도 크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엄마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임신기간부터 몸과 마음, 커리어를 둘러싼 많은 요소들이 호떡 뒤집듯이 바뀌는 것을 감안하면 임신 기간은 내가 다른 걱정 없이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하고 신경 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지는 일은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임신 기간뿐만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육아에서도 정말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21세기의 태교는 달라야 한다.
아기를 낳기 전, 나를 먼저 키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9개월 동안 훌쩍 자란 '나'는 천국과 지옥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아기를 같이 키워줄
세상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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