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오오ㅗㅗㅗ오옷!!!!" "아아아ㅏ아아ㅏ아악!!!"하는 사운드면 충분하다. 굳이 영상을 추가한다면 울부짖는 산모에게 머리채를 잡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남편의 모습 정도랄까.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3n살이 될 때까지 출산은 TV에서 봤던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산을 앞두고 들었던 교육들에서 공통적으로 당부한 '아이가 놀랄 수 있으니 절대 소리를 지르지 말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아프다는데, 다들 아파 죽는다는데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말라는 거야???
나는 감각이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다. 몸에 붙은 아주 작은 티끌도 발견할 수 있고, 그걸 바로 제거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다. 마사지를 받을 때도 곡소리를 하도 많이 내서 관리사님들이 매번 신경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침을 맞을 때도 윽 으윽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서 한 번은 한의사님께 '제가 엄살이 좀 심해요.' 하고 멋쩍게 웃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통증에 대한 반응은 누구한테나 다른 거라고, 지나님은 감각이 예민한 편이어서 그런 것뿐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너무 엄살이 심하고 유난스러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감각이 예민해서 그런 거라니! 갑자기 격이 한층 높아졌다. 그렇게 예민한 내가 출산을 해야 한다니 얼마나 걱정이 됐는지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고통 최약체인 내가 예전부터 자연출산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의료적인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 옛날에 우리 할머니들이 아기를 낳던 방식처럼 아기와 만나는 출산 방식. 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고 출산의 주체가 의사가 아니라 나와 아기라는 점이 좋았다. 좋지 않은 점은 바로 비싼 비용... 그리고 가장 거대한 장벽은 무통주사 없는 "쌩"진통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출산을 하려고 마음먹은 병원은 자연출산을 하는 병원이었다. 산파 역할을 하는 듈라가 간호사라는 점, 의사가 상주하는 병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학병원이 근처에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나 가장 높은 장벽은 무통주사 없는 쌩진통이었다. 휴......
임신 20주쯤 되었을 때부터 남편과 출산 방식을 의논했다. "자연 출산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우리가 같은 방에서 아기를 만날 수 있고 회복이 빨라.... 블라블라.... 가격이 비싸. 그리고..... 나는 무통주사가 없어서 진통 다 하고 아기를 낳아야 해." 남편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출산을 겪게 하는 것도 미안한데 아프게 낳아야 한다니 남편은 "하고 싶다면 하겠지만..." 하며 망설였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의료진이 주체가 되는 출산이 아니라 가족이 중심인 출산을 해보고 싶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자연출산에 대한 책을 모두 빌려다가 공부하고 듈라를 만나서 더 자세한 사항들을 들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연출산에서 '이완'을 엄청나게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완? 몸에 힘을 어떻게 빼지? 주사 맞을 때 힘 빼세요~~ 해도 내가 힘을 빼는지 안 빼는지 몰라서 여러 번 주의를 받는데.... 책에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이완의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상태의 그림을 계속 머릿속으로 그렸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아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섬나라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맛난 음료도 마시고 물놀이하면서 파도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었다. (진통을 파도라고 표현한다.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는 과정이 파도를 닮았다나?)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나름 트레이닝은 열심히 했더랬다.
대망의 출산 날. 진통의 주기가 길 때는 고통도 심하지 않아서 이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에 달려있는 수축 기록장치가 고통 수치를 최고로 찍어댈 때는 내 온몸에도 같이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수축의 고통이 밀려올 때 '와.. 이게 진통이구나!' 하는 생각에 구운 오징어, 삶은 새우처럼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습습 후후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방송국 놈으로서 가다듬은 복식호흡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호흡이 안정되고 나서는 그동안 연습했던 이미지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따뜻한 태양과 따뜻한 바닷물, 밀려오는 파도에 아기와 내가 둥둥 떠다니면서 물놀이하는 장면. 저 멀리서 진통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면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마시고 뱉기를 반복했다. 진통이 심해질수록 숨을 더 천천히 마시고 뱉었다.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남편과 이야기도 나누고 물도 마시면서 사이를 즐겼다. 이 패턴이 적응이 되자, 진통이 심해지고 간격이 짧아지는데도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서 파도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아픈데도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정말 신기했다. 남편도 기계가 아파 죽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냐며 정말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내 몸이 알아서 출산을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낼 때까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진통을 잘 흘려보낼 수 있었다.
다만 아기를 낳기 직전, 아기의 심박이 떨어지는 급박한 상황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됐다. 그 분만 전 30분이 출산 과정 중에 제일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30분 동안도 고통스러워서 울고 신음을 쏟긴 했지만 "아기가 더 힘들겠지?" "아.... 빨리 낳고 싶다..." 등의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면서 힘든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도 계속해서 호흡을 놓치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은 들지만 후회는 없다. 정말로 울부짖음, 고함 없는 우아한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통 최약체인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 말이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출산의 고통? 출산 후 변하는 나의 상황과 몸매? 나는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출산에 대한 이미지가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출산을 그리는 방송가의 언어와 표현 방식은 어떠한가? 너무 사실적이거나 너무 희화화된 표현이 아니라 출산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방송가에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는 '출산'하면 무서운 '느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과 올바른 지식을 떠올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