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 보통 1월 1일 땡~ 하면 실행에 옮겼던 새해 계획 중 하나인 매일 글쓰기를 작년 12월 중순에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한 달 도전 완료를 앞두고 있다.
12월 말부터 충격적인 부고를 잇따라 접했다. 모두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왜? 왜 벌써?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24살을 눈 앞에 둔 여름에 그 친구를 4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까지 크고 작은 추억이 많았던 친구였다. 방학 한 달 동안 내가 일하던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던 그 친구와 나는 꼭 밥 한번 먹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어느새 한 달이 지나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늘이 학원 마지막 날이라고 아쉽다고 했었다. 다음 방학을 기약하며 헤어진 후 두어 달이 지났을 때 내가 받은 연락은 그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육개장을 먹었다. 말없이 밥을 뜨던 친구 하나가 "나중에 맛있는 밥 산다고 하더니 이렇게 밥을 사네..." 하는 말에 또 울음이 터졌다. 관 위에 장미로 예쁜 하트를 만들어 올려 땅에 묻고 오는 길의 영구차 안에는 장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뽕짝끼 가득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한 이유는 우리가 이런 일을 맞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먼저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필요는 없지만 생각했다면 가급적 즉시'가 내 삶의 모토가 되었다.
이번 한 달 역시 가급적 즉시의 결과물이다. '언젠가는 해야지'의 언젠가는 내가 시점을 정하지 않은 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밥 한번 먹을 줄 알았던 친구와 결국 하지 못했던 식사처럼. 그래서 마음이 있다면 일부러 시간을 정하고 마음을 내야 한다. 거기엔 용기도 에너지도 필요하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올해 중요한 계획인 글쓰기에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매일 조금씩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옮기는 작업은 아기를 돌보고 돌아서면 밥을 준비하는 루틴한 일상의 작은 긴장이었다. 오늘 안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그랬다. 마감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했지만 움직이게도 했으니까.
무사히 한 달을 보내고 올해를 조금 일찍, 성공적으로 시작했다는 느낌이 생각보다 더 즐겁다. 다음 한 달은 또 어떻게 채워갈지, 어떤 '가급적 즉시'가 좋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상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