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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스켓 Jan 05. 2017

레이캬비크에서의 아침식사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달그락 달그락'


분주한 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이었어. 거실에서는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지 몇몇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이따금씩 웃음소리도 섞여서 가라앉은 아침 공기 위로 아지랑이처럼 울려 퍼졌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아래층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녀는 어젯밤 얘기한 대로 따뜻한 핫케익을 구웠을 테고 우리 옆 방에 있던 친구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었을 거야. 그것들을 냄새와 소리만으로 상상하는데,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 


일요일 아침마다 엄마가 끓여주던 김치죽이 뜬금없이 생각났어. 뜨거워서 호호 불어 먹어도 항상 입천장이 까지던 죽. 우리 가족은 일요일만 되면 그 김치죽을 한 냄비 끓여 먹고는 했는데, 마지막까지 죽을 긁어먹는 사람은 항상 나였어. 나는 냄비 밑에 눌어붙어 있는 게 그렇게 맛있더라고.


눈도 다 못 뜬 채로 달짝지근한 음식 냄새를 맡고 있으니 낯선 이 집에서 오래전 포근함 같은 게 파도처럼 밀려왔어. 엄마 아빠 생각이 잠깐 났고, 옆을 보니 아직 잠들어 있는 그가 보였어.


'참, 우리도 이제 가족이지.'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더라.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도, 그걸 인지 하지 못한 체 나의 하루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도, 생각해보니 너무 행복했어.





어젯밤 보았던 Thorunn의 집은 아침이 되니 더욱 멋졌어. 우리는 이 곳에서 이틀을 묶었지.


나는 공간을 꾸미는 것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거든. 왜 우리는 가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소한 행동으로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며 말하잖아. 공간을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내 마음에 드는 의자 하나, 커튼 하나로도 기분이 바뀔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Thorunn은 자신의 집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보였어. 구경하면 할수록 그녀의 확고한 취향이 묻어 나왔거든. 집안 구석구석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거 같아 보였어.





그녀는 빵과 시리얼, 핫케익, 치즈 같은걸 부엌 한편에 주르륵 놔두고 물을 끓이고 있었어. 우리는 세수도 안 한 체 굿모닝 인사를 하고 빵을 고르기 시작했어. 빵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하나씩 맛만 보아도 배가 부르겠더라고. 


그녀는 편하게 먹으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접시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어. 그 눈빛이 참 편안해 보이더라. 누군가에게 아침을 대접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 같았어.





다른 방에서 지내던 친구들은 이미 다 먹고 일어선 후였는지 테이블엔 우리 둘 뿐이었어. 먹는 동안에도 그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주었지.


내가 직장인 일 때, 그때 나에게 아침식사란 물 한 잔 마시거나 바나나 같은 걸 하나 들고나가는 게 전부였어. 늘 지각할까 서두르는 게 나의 아침이었거든. 이렇게 여유롭게 차를 끓이고, 빵을 먹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아침 식사의 현장은 정말로 신선했어. 게다가 레이캬비크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과의 대화라니. 그녀 덕분에 아이슬란드에서의 시작이 정말 좋았어.





마치 어느 가정식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는 기분이었어. 비싸 보이는 식기류들이 많았고, 그것들은 분명 무심하게 놓여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멋진 플레이팅이 연출되었어.





레이캬비크에서의 첫 식사.





우리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어.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건 설레었지만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건 너무 아쉬웠어. 우리는 열흘 동안 링로드를 따라 아이슬란드를 둘러보고 다시 레이캬비크로 올 거라고 그녀에게 얘기했어. 혹시 그 날 숙박이 가능하면 다시 한번 묶을 수 있겠냐고도. 하지만 그녀의 집은 인기가 많아서 예약이 가득 차 있었어. 결국 우리는 여기서 이만 안녕을 해야 했지.





레이캬비크에서 떠난 지 얼마 안돼서 에어비엔비 어플에 알림이 왔어. 그녀가 나에 대한 후기를 남겨주었다고. 그녀는 우리를 의사소통이 잘 되는, 친절하고 좋은 손님이라고 남겨 주었고, 나는 그녀에 대해 아주 멋진 집에서 아주 맛있는 아침 식사를 대접해준 호스트라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고 남겨 주었어.


그건 정말로 내 진심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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