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주세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한 하리(Johann Hari)는 그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2023)에서 '집중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집중력이 부족해짐을 떠나 '붕괴'되어 간다고 꼬집으며 '비만'과 같이 전 세계적인 유행병처럼 퍼져나간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10대들은 한 가지 일에 6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며,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은 단 3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을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들’과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것들’로 나누어 설명했다. 멀티태스킹,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과각성 상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만든 테크 기업의 전방위적인 조작은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들이고, 수면 시간과 소설 읽기 경험, 몰입의 체험, 영양가 있는 음식은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짐으로 인해 행복해지기 위한, 혹은 설정한 목표를 세우기 위한 '몰입'이 어려워진다. 학생들은 학습량을 채우지 못해 시험 성적이 떨어지고, 직장인들은 하루에 해야 할 업무를 채우지 못해 야근을 하고, 피곤은 켜켜이 쌓이는데 자존감과 성취감은 점점 떨어지곤 한다.
멀티태스킹과 만성적인 스트레스, 한꺼번에 쏟아지는 너무나 많은 정보로 인해 집중력에 제한을 받는다면, 반대로 한 번에 하나씩 일과 장소를 정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컴퓨터로 작업을 할 때는 꼭 필요한 인터넷 창을 하나만 띄워놓는다든지, 밥을 먹을 때는 오직 식사에만 집중을 하거나, 자녀와 놀이를 할 때에는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도록 스마트폰을 가방 안에 넣어두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한번 형성된 습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 번에 하나씩만 해보는 거야.'라고, 인식하고, 행동한다면 조금씩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엄마와 아내, 스타트업 대표, 에세이 작가,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와 같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심플한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어쩌다 보니 역할이 하나둘씩 늘어 이렇게 되었다. 해아 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기 위해 꼼꼼한 일정관리는 필수이다. 업무와 학습 관련 다이어리, 두 아이 엄마 역할 다이어리를 각각 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놓치는 것이 생긴다. 역시, 빈틈과 실수로 점철된 인생이다.) 한정된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의 합리적인 사용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다 보니 주방에 있는 식탁에서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를 테면, 설거지를 하고 나서 서재까지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가까운 식탁 위에서 책을 펼쳐놓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점심 식사시간이 되면 읽던 책을 덮어 식탁 구석으로 쓱 밀어 놓고, 밥을 먹었다. 밥만 먹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딸과의 대화에서 할 말이 생기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유튜브 쇼츠로 핵심만 뽑아서 시청했다
.
한 번에 하나만 하는 몰입의 습관이 오히려 일의 효율성을 올린다는 것을 배운 후에는, 6인용 식탁 한 귀퉁이에 쌓여있던 책과 노트북을 깨끗하게 치웠다. 책과 노트북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기 위해 서재를 청소했다. 내가 식탁 위에서 업무와 공부를 하던 사이, 서재는 아이의 장난감이나, 더 이상 안 읽는 위인 전집, 안 쓰는 오래된 청소기, 아직 다 못 먹은 한약이 잔뜩 들어있는 박스 등으로 가득 찼다. 어느덧, 창고처럼 변해 버렸다. 두어 시간 땀 흘려 정리한 공간 사이에서 드디어 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걸레로 책상을 문질러 뽀득뽀득 닦았다. 원래의 사용목적을 되찾아 쨍하게 윤이 나는 책상 위에 아까 그 식탁 위에 쌓여있던 책들, 노트북, 머그컵, 그리고 예쁜 꽃병을 올려놓았다. '글을 써야 해서, 공부를 해야 해서, 일을 해야 하니까'라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서재 청소를 마치고 나자, 속이 시원했다.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일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정리 정돈을 했을 뿐인데,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내 마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거창한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이 바뀌자, 환경이 변했고, 환경이 변하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제 나는 드디어, 새롭게 배송받은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쓸 용기, 사업 계획서를 수정해서 이번에는 꼭 지원금을 받아내겠다는 결의가 생겼다. 작은 일이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내일은 또 어떤 실천으로 나의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