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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Dec 21. 2022

작년과 비교했을때

남과 나를 비교하는 행동은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육체를 병들게 하고 만다. 이 세상에서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 기분에 잠식 당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다움과 건강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1년 전 나의 모습과 나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 사실 그날이 그날같고, 별 변화가 없어보여, 내가 얼마만큼 컸는지 잘 알수가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확 1년전 과거로 돌려서 비교해보면 그때와 지금의 확연한 차이를 알 수있다. 

2021년 12월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는 어린이집에서 점심은 커녕 물도 마시지 않아 오후1시면 하원하는 네살 아이를 데리러 다니느라 무척 바빴다. 그나마 세 시간 있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은 아들의 언어발달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현저히 다르다는 우려 섞인 말씀을 해주셨고, 나는 아들의 발달검사지를 받아 주말 동안 300문제를 풀고,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더랬다. 오늘도 아이가 한마디도 안 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눈물을 머금고 아이와 매일 마트에 들르기 시작했다. 마트에 가서 오이, 버섯, 상추, 김치, 돼지고기, 콩나물, 라면 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명확하게 읽어주고, 따라 하도록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배가 한참 고팠을 아이에게 맛있는 점심상을 차려서 함께 먹고는 마트에서 샀던 과자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때는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점심만 먹고 와도 소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11월 중순, 굳게 하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점심 상만 차리지 않아도 얼마나 편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 사이에 누워 낮잠을 자고, 3시 30분에 하원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나에게도 글을 쓸 시간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1년 전에는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 있는 온갖 종류의 명사를 가르쳐 주었는데, 지금은 아들이 한글을 깨우친 덕분에 더 이상 과일이나 채소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콩나물 가져올래?"라고 말하면 아들이 "네." 하고 대답하고 콩나물을 하나 아무거나 한 봉지 집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이 중국산 콩으로 만든 콩나물이던,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 이던 말던 상관 없이, 아이가 집어온 그 콩나물을 매우 감사하게 받아 장바구니에 넣는다. 집에 와서 국을 끓이고, 아들에게 '이거 네가 골라온 콩나물로 국 끓인 거야.'라고 말해준다. 올해 초만 해도, 단어 하나씩 따라 하던 아들은 이제 두 단어, 세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따라 하고, '엄마, 우유 주세요.' 혹은 '엄마, 사랑해요.' 또는 '아빠 치즈 두 개 까 주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를 또박 또박 말하며 한 국어 하는 귀여움을 발산한다. 작년 이맘때 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발전이고 성장이다.

무엇보다 작년에는 나에게 매일 글쓰기라는 루틴이 없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며 일기와 기도문을 쓰기는 했지만, 너무 피곤하거나 힘들 때는 건너 뛰곤 했다. 이처럼 본격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는 정돈된 글쓰기는 아니었다. 종종 아이 때문에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걱정되고, 불안할 때는 혼자서 삭이거나, 남편과 대화를 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곤 했다. 그러나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더욱 열이 받아서 아니 한만 못할 때도 많았다. 심리 상담을 받으려면 너무 비싸서 부담스러웠다. 아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오후 4시쯤 하원을 하게 되며 점점 나의 마음에도 나를 위한 구체적인 꿈이 그려질만한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조금씩 나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하다 보니, 11개월이 흘렀고 어느덧 나는 쓰는 사람, 브런치 작가가 되어있다. 

오늘도 여전히 나를 절망스럽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인생이란 하루에도 몇 가지씩 나의 마음을 흔들만한 일들이 종류별로 발생하고 나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새로운 미션을 준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어지면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이렇게 짜증 났던 일은 이따가 글을 쓰면서 정리할 거야. 글한테 이를 거야.'하면서 감정 폭발의 고비를 비교적 부드럽게 넘기게 된다.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그에게 나의 육아 고충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심리 상담을 받으러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회복탄력성을 기르게 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넘어지지만 매일 다시 일어난다. 글쓰기를 통한 나와의 대화 덕분에 나는 전혀 길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도 얻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따뜻하고, 아니 뜨거운 위로도 얻고, 생각지 못했던 감사할 것도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차곡차곡 써서 쌓아간 글이 늘어날수록 나의 식견이 넓어지고, 지혜가 풍부해지고, 참을성이 길러지고, 더욱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되어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지금은 서너 단어를 연결하여 말을 하는 아들이 수다쟁이가 되어 친구들과 영어 수업 시간에 장난치고 떠들다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글을 쓰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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