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누려야 할 거절의 기쁨
가기 싫은 '단체엠티' 안 가기
예전에는 나도 속한 곳에서 치러지는 각종 행사에 대부분 참석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도 일단 가면 좋은 일이 생기겠지 기대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여러 경험을 하며 그 수많은 모임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는 힘이 길러지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려면,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두고두고 꺼내어 보며 흐뭇하게 웃을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내가 가고 싶은 곳인가?' 하는 질문을 해야한다. 이윽고 'YES!'라는 대답이 매우 쉽고 자연스레 나와야 할것이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우리가 가정, 회사, 종교단체, 동호회 등, 크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려면 그 구성원으로 해야 할 의무와 역할이 필연제으로 생긴다. 작게는 조카의 돌잔치 참석부터, 크게는 시댁 어르신들의 생신, 사돈어르신의 팔순잔치 참석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회사에서는 팀 회식, 부서 회식, 임원과 함께하는 회식, 체육대회, 등산 및 골프대회 등 온갖 애사심과 단합을 기르기 위한 각종 모임에 참여한다. 혹, 교회에 출석한다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각종 성경공부모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등에 드리는 절기 예배에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무가 되곤 한다. 아, 지인의 결혼식, 혹은 장례식에 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개인의 돈이나, 시간, 마음 등의 내적, 외적 에너지를 필연적으로 사용한다.
태생이 외향적이라 다른 사람과 어울려 대화하고,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것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두 시간만 만나고 돌아오면 반드시 집에 와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눈을 감고 쉬든, 음악을 듣다 자든, 반드시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모임 참석 필수!'라며 참석 여부를 묻는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시지는 누군가에게는 비타민과 같은 즐거운 알람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임을 가야 할 이유와 여유와 당위성을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내어야 간신히 '참석'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매우 부담스러운 독촉장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하루 24시간 중 단 몇 시간이라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조용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40여 년 이 세상에 몸담고 살다 보니, 여기저기에 이름을 걸어두고, 회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이곳저곳에서 각종의 모임이 생성되며, 참석여부에 대한 메시지가 수시로 온다. 최근 가장 곤란했던 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봉사단체에서 주최하는 엠티에 참여하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 성경을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과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면 없던 힘도 생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자원봉사로, 초등학생들에게 성경과 영어를 가르쳐 준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캠프를 간다. 참 즐겁다. 그런데 봉사자들과의 엠티는 진심으로 사양하고 싶다. 무려 1박 2일 동안 경기도 모처의 펜션에서 이루어진다니. 저녁 메뉴는 황송하게도 '소고기'와 돼지고기라고, 주요 프로그램은 레크리에이션과 명랑 운동회라고 했다.
Oh. My God.
나는 고기를 불에 구우며 타지 않게 뒤집고, 정신없이 상추쌈을 싸서 먹으며 지글거리는 불판에서 오고 가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피곤하다. 게다가 식사 초반 누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울 것인지, 연장자가 하는 건지,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가 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 어린 20대가 해야 하는 것인지 은근한 눈칫싸움과 긴장감 역시 마땅찮다. 그리고 그 고기가 탔네, 안 탔네, 역시 고기는 네가 구워야 제맛이네 하는 구운 고기에 대한 평을 들어야 하는 것이 싫다. 고기를 굽는 사람에게 이것 한번 드셔보라면서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줘야 하는 것인지, 그것 까지는 투 머치 인지 생각하는 것도 곤란하다. 대화다운 대화는 하기 어렵고, 고기가 타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압박에 시달리느라, 입에 정신없이 상추쌈을 아귀아귀 쳐 넣어야 하는 저녁시간이 마치 전쟁통 같다. 거기에 레크리에이션은 운동신경 없는 내게는 정말 쥐약이다. 단체 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함이라지만 얼굴에 포스트잇들은 대체 왜 붙여야 하는지, 남장이나 여장은 왜 해야 하는지,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오면 왜 막춤을 춰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망가지고, 상하는 것이 국룰이라고 하는데, 구제 불가한 몸치에 조용한 음악만 좋아하는 나에게는 세상 맞지 않는 옷이다.
"불참합니다. 사유: 가족 행사"
단박에 불참 메시지를 보냈다.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갈걸 그랬나?' 하는 잠깐의 찜찜함과 후회도 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단톡방에 여지없이 올라오는 얼굴에 포스트잇 붙은 사진, 단체 줄넘기 하는 사진, 막춤 추고 있는 사진들을 보며 진심으로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에, 난 여전히 그러했듯 가족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신선한 고등어를 뒤집어 가며 굽고, 샐러드를 만들고, 두부와 채소를 잔뜩 넣은 된장국을 보글보글 끓여 가족들과 맛있게 먹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며 유쾌하게 웃으며, 고등어 가시를 발라 아이의 밥 숟가락에 얹어주고 있었다. 다음날에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새로 나온 에세이가 있어서 선 채로 다 읽었다. 영혼이 충만히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에는 숲길을 걸으며 조용히 산책을 했다. 맨발로 걷고 싶은 고즈넉한 산책길이었는데, 차마 양말을 벗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무와 흙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유난히 거절이 어려웠던 나에게, 이렇게 가기 싫은 곳을 안 가는 용기가 생겨서 감사하다. 보아하니'나 빼고 대부분 참석하는 모임'을 홀로 가지 않고도 그 소외감을 견딜 수 있는 힘이 길러진 것 같아 기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를 누려본다.
You also deserve 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