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 야간상담 모니터링 참관 후기
십대여성인권센터에는 월에 한 번 '야간상담'이 열린다. 이날은 상담원들이 모두 오후에 출근해 어플리케이션과 사이트 모니터링에 들어간다. 오후에 시작한 모니터링은 밤 10시 30분까지 이어지고, 모니터링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계속된다. 공유까지 끝나면, 열두시가 조금 안 되어 야간상담 일정이 종료된다.
women do IT 팀은 매월 돌아가면서 야간상담에 참여하기로 했다. 실제 어플리케이션/웹사이트를 통한 십대여성청소년들의 피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모니터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용 현황을 조사하기 위함이다. 2월 야간상담에는 현승님이, 3월 야간상담에는 내가 참여했다. 나름대로 예상을 하고, 마음을 준비했었지만,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야간상담 모니터링은 크게 두 가지 분야로 진행됐다. 어플리케이션과 웹 사이트. 어플리케이션에서는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 6개(다톡, 채팅몬, 앙팅, 앙챗, 꿀톡, 스윗톡) 과 카카오톡 오픈채팅이 포함됐다. 웹사이트의 경우 세이클럽, 인터넷 개인방송, 성매매 알선 사이트 등을 검색하고 신고하거나 모니터링했다.
나는 먼저 어플리케이션 모니터링에 소속되어 3개의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 모니터링을 참관했다. 참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은 채팅 메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코인을 얻을 수 있었다. '코인'이란 앱 안에서 쓰이는 화폐 단위로, 쪽지나 메세지를 보낼 때마다 3~10코인을 사용해야 한다. 코인이 없으면 상대에게 말 걸기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채팅방을 열어놓은 사람은, 누군가 자신에게 메세지를 보내면 코인을 받을 수 있다. 코인은 돈으로 충전하는 형태를 띄고 있고, 메세지를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코인도 현금으로 즉시 출금 가능하다.
앱을 통해 현금 출금 신청한 사람의 목록은 위의 내역처럼 모두 다 볼 수 있다. 현금으로 출금하지 않더라도 기프티콘으로 교환도 가능하다. 음식은 물론이고 문화상품권, 핸드폰 통신료까지 교환 가능하다. 이 채팅 어플리케이션의 구조를 보고, 알바몬을 가득 메웠던 아르바이트 공고들이 번뜩 스쳐지나갔다. "우리는 대화만 합니다. 착석, 스킨십 일절 없어요." 한창 알바를 구할 때 보았던 광고들이었다.
채팅을 통해 오가는 고작 3~10원 정도의 메세지들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까. 어떤 사람은 상담을 위해 우리가 보낸 메세지들에도 미안해하면서 다시 코인을 선물하기까지 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때문에 오히려 더 오프라인 만남에 응하게 되는 효과가 일어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러나 10개의 메세지를 보낸다 해도 고작 500원 뿐이다. 돈 버는 사람은 메세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 메세지들을 보내도록 가열찬 충전을 유도하는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이다.
아자르(Azar)는 비교적 최근 생긴 영상 랜덤채팅 앱으로, 다른 사람과 랜덤하게 만나 영상으로 채팅할 수 있다. 모니터링을 하다보니 10대 청소년의 비중이 꽤 높았다. 센터에서도 활동가들이 영상채팅으로 상대를 만나 직접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소개하고, 아자르에서 피해 사례가 없는지 조사했다. 약 30여 분 간 만난 10대 청소년들은 십여 명 가까이 됐고,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청소년들이 상대방이 성기를 노출하거나 신체 일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모니터링 이후 아자르를 더 조사해봤는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아자르 후기를 보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특히 아래 사례의 경우 피해가 상당히 큼에도 불구하고, 아자르 측의 답변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센터가 하는 홍보, 모니터링은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10대~20대 여성으로 나이가 설정된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센터로 연락해달라고 권고하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즉각 답변해서 도움을 청하는 사례는 많지 않고, 오히려 이 내용을 저장해놓고 있다가 수일 뒤 연락오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메세지와 함께 센터의 지원 내용과 연락처가 담긴 웹 홍보물 이미지를 같이 공유했다. (당연히 메세지를 보낼 때마다 코인이 차감됐다. 센터는 6개 톡 서비스의 홍보, 모니터링을 위해 늘 포인트를 충전시켜 놓는다고 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영상채팅 앱 아자르를 통한 홍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픈채팅의 경우 10대 청소년들이 많은 채팅방을 중심으로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내용을 홍보했다. 오픈채팅에 적절하지 않은 채팅방이 개설된 경우 일일이 돌면서 신고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센터에서 진행하는 모니터링은 다양하다. 웹 사이트, 개인방송 스트리밍 사이트 등을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모니터링하는 개인방송에서도 놀라운 게 있었다. 남성BJ가 자신의 개인방송 썸네일에 여성의 사진을 올려놓고 제목에는 성관계, 체위 등을 기재한다. 그리고 방송을 진행하면서 남자BJ에게 코인을 가장 많이 선물한 남자에게 해당 여성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온라인 상에서 남성이 버젓이 포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센터 사무실에는 책상마다 충전선과 이어폰이 가득 꽂혀 있다. 거기에 컴퓨터까지 들어가다보니 멀티탭이 언제나 만석이다. 상담/모니터링 용도의 핸드폰을 상시 충전 중이기 때문이다.
야간상담에 짧게 참여했지만, 그 얼마 안되는 시간에서도 인류애가 박살나는 많은 현장이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장면마다 놀라고 당황해 허둥지둥하는데, 센터의 활동가들은 익숙하게 빠른 손놀림으로 대처했다. 야간상담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단짠'을 구비해두어야 하는 철저함에서도 역시 오랜 노하우가 엿보였지만, 이런 노하우가 쌓일 만큼 오랜 시간 풀리지 않고 산적해있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무실 분위기는 훈훈했다는 것. 처음 아자르를 열고 당황해하는 나 대신 재빠르게 옆에서 멘트를 해주며 실수를 보완해주던 분께도 한 시간에 걸쳐 어플리케이션 모니터링에 대해 상세하고 꼼꼼하게 설명해주신 분께도 감사했다. 다음엔 실수하지 않고 잘 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