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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Sep 08. 2023

내년에는 이사 갈 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나에게 정리되지 않는 공간이다. 먼지를 털어도 거미줄이 생기고 창문이 없어 꿉꿉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오래된 방이다. 누구의 유튜브에서는 낭만적이고 누군가에게 실리콘 밸리라는 꿈이고 어느 누군가는 겨울이 없어 살고 싶은 곳이다. 이제 곧 뉴욕보다 오래 산, 내가 미국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낸 곳이 될 샌프란시스코에게 나는 미련이 없다.


골든게이트 공원 어디쯤 가면 좋아하는 나무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노을이 질 때쯤 분홍색과 하늘색이 자연스레 흐르는 하늘이 얼마나 아름답고,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에서 차를 타고 내리막길로 꺾일 때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눈이 시원하게 멋있는지, 아. 하나하나 귀여운 구석들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계속 먼지를 털고 이뻐해 줄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뭐든 원할 때 쉽게 갈 수 있는 걸 좋아한다. 회사를 제외한 나의 생활에서 갈 곳도 할 것도 없는 회사 동네에 살기는 싫었다. 매일 출퇴근을 위해 기차를 왕복 두 시간을 타야 해도 샌프란시스코에 살기로 했다. 친구를 보러 처음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왔을 때, 차를 타고 쓱 지나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여기서 살 일을 만들지 말자 했는데, 계획대로 되는 건 남이 정해주는 것 밖에 없나 보다. 여기서 하루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는 나에게 진심으로 아 정말 싫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기가 어때서, 이 날씨가 좋다고, 여유로운 풍경을 보라고, 이만하면 도시지 않냐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노랗고 빨간 은행과 단풍이 나부끼던 뉴욕의 가을을 떠나 온 샌프란시스코는 비바람이 쳤다. 원래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인데 내가 온 해에는 두 달을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서 오자마자 무인양품에 가서 초경량 패딩을 사고 팔꿈치가 빛날 때까지 입고 다녔다. 여기 와서 내가 빛낸 것이 하나쯤 있다면 내 남색 초경량 패딩의 팔꿈치 정도다. 그때부터일까. 이 도시는 가끔 코너를 돌다 만난 길과 건물도 사람도 회색 필터를 끼고 보는 느낌이다. 차분한 회색보다 을씨년스럽다. 아직도 나는 이 초가을인 듯 축축하고 살짝 스산하다가 해가 내리쬐는 묘한 날씨가 싫다. 비가 장대같이 내리고 더워서 땀이 흐르고 어느 날은 꽃 향기가 나다가 눈이 소복 쌓여서 진흙탕이 된 눈을 잘못 밟아 성을 내고 싶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날씨 아래 살아가는 곳이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홈리스들과 블록 하나 지나면 바뀌는 길의 분위기와 끝이 안 보이는 경사진 길은 이 도시에서 나의 생활 반경을 더 좁게 만든다. 처음 와서 월급의 70프로를 우버에 썼다. 워낙에 여기저기 구경 가고 걷고 하고 싶은 거를 해보러 가야 하는 성격에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도시를 횡단하려면 우버를 타야 했다. 돈을 벌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동네에 내려 얼마 남지 않은 저녁에 하고 싶은 걸 다 넣으려면 꾸역꾸역 나를 우버에 태웠다. 여기서 뭐가 제일 맛있어? 어디가 제일 좋아? 물어본다면 눈을 굴리고 머리를 굴려도 다 고만고만하다. 나는 시카고도 싫어하는데 딱 하나 굳이 가야 한다면 두 시간 기다려 먹었던 두껍고 입에 착 달라붙는 베이컨과 눅진하고 노른자가 흐르던 버거를 먹기 위해서다. 여기는? 없다. 일 년에 평균적으로 8킬로를 찌우는 이곳의 식당들은 다른 도시에 가면 대체 가능한 식당들이다. 살이 찐 이유는 음식이 맛있어서 보다 허한 마음을 음식으로 입안에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주말을 보내고 방에 돌아오면 마음이 뿌듯한 날은 별로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 도시에 살던 나를 생각하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서 여기를 벗어나면 좋겠다는 내 말에 오랜만에 전화를 하던 언니는 취직을 그토록 바라던 몇 년 전을 생각하라며 만족하고 살라고 한다. 그러게요. 지금은 돈도 벌고 일도 하고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고 우울하면 맛있는 걸 먹고 운동을 한다. 그런데 쉽게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한숨을 쉬는 건 다 이 도시 탓으로 돌려버린다. 감사할 일이 참 많을 텐데 그 감사한 일 틈에서 스스로를 동정한 이유를 찾고 스스로도, 이 도시도 사랑스러운 면을 찾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처음부터 도시의 잘못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도시는 도시대로 숨을 쉬고 하루를 보내고 사람들은 굴러간다. 가까이 우리가 살아서 좋다는 친구의 말처럼 사람의 행복은 인간관계가 열쇠라는 유명한 연구결과처럼 이 도시가 아니라 내가 문제 인건 아닐까.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4년을 노래 불렀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용기가 없어 코로나 때 뉴욕으로 이사도 못 가고, 혹시나 곧 재택이 끝날까 봐 동네도 못 옮겨보고 기차가 가까운 같은 동네에서 다른 아파트만 전전하고 있다. 3일을 출근하는 지금은 왕복 2시간 기차를 타는 게 너무 힘들다. 지금도 머리 한편에서 내일은 어떻게 하면 출근을 안 하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지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을 한다. 언제든 착착 배낭을 메고 캐리어 하나 들고 도시를 이사 다닐 것 만 같던 나에게 이젠 남편도 하나 강아지도 하나 짐도 주렁주렁이다. 이 도시가 싫어 사랑하는 것들을 만들어 보았으나,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라도 우리는 행복하리. 주렁주렁 무거운 나를 언제면 들어 옮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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