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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Nov 19. 2022

들어오는 물과 나가는 물

오늘의 마음과 글과 여러 가지


글은 오늘의 복잡한 마음을 풀어놓고 싶을 때 술술 써진다. 내용도 맞춤법도 신경 쓰지 않고 내 걱정과 불안을 흘러나오는 대로 쓴다. 가끔은 걱정과 불안이 둥실 떠다니면 나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기다린다. 그러다 마음이 팡 터질 것 같을 때 뭐라도 한 자 적어본다. 그럼 두둥실 떠다니던 게 살살 내려오는 듯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채우거나 비워나가는 세상이다. 어느 날에는 이런 내 마음도 공감을 받고 싶어 플랫폼에 올릴 때면 다시 눈치도 보고 관심도 받고 싶어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도 가끔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고 이 글이 그런 시작이 되어 주진 않을까 한다. 실용적인 글을 써볼까 하다가도 결국 시작은 복잡한 내 마음이다. 복잡한 내 마음을 누가 읽을까 싶어 아쉬워 하지만 그래도 글을 쓰지 않으면 꽁꽁 풀리지 않으니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목까지 올려본다. 물이 차올랐다. 다시 천천히 숨을 내보내면서 손을 내리면서 물도 같이 빠져나간다.


스스로 이런 것도 힘들어하냐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아마 내가 버틸 수 있는 레벨이 높다고 생각하거나 기대가 높은 게 아닌가 한다. 가끔 해본 생각은 어쩌면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작고 그 작은 걸 이만큼이나 단단하게 노력해 온건 아닐까. 그래서 힘든 건 아닐까 - 스스로 덜 혼내도록 내가 스스로 챙겨하는 일이 글쓰기와 상담이다.


어항을 생각해보고, 어항 물에 얼굴을 넣고 빼는 걸 잊는 스스로를 생각한다.


어항 안에 뭐가 있는지도 상상한다. 물과 모래가 가득 차 있거나 물고기나 거북이가 쓱 살랑 옆을 지나갈까. 누군가 숨을 불어넣어 줄지 몰라도 그 물속에서 나오지 않으면 다시 숨이 막히게 된다.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아니 밖이 있다는 걸 금붕어의 기억력으로 까먹었다.


그런 나를 들어 올려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스스로를 보라며 거울을 들어주는 게 상담이었다.


상담을 한다고 해서 내가 이제 그 어항 속에 다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크게 숨을 고르고 다시 어항에 들어가도 두리번거리다가 들여다보다가 다시 세상 밖에서 숨을 쉰다. 가끔은 그 어항에 스스로 들어가 나오기 싫을 때도 힘든 일이 있구나, 불안 하구나 하고 다독여 주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안다.


우울함은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 이유를 잘 매만지거나 바라보거나 달래거나 방법이 있겠지만 이유가 없을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머릿속에서는 왕왕 끝을 생각하고 눈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글자를 읽고 데굴 굴러간다. 그럴 때면 우울함의 꼬리를 잡으려 하지 말고 방향을 어떻게든 틀어보려고 밀고 밀고 감사한 걸 하나씩 꼽아본다. 하나를 다섯 개로 쪼개 감사함을 만들어 낼 힘이 남아있음도 감사하면서 빠져나와보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 들어오는 물과 나가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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