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뒤에 숨겨진 맛
“이영자 김치만두” “이영자” “김치만두”
TV프로그램 속 영자미식회가 끝난 뒤 각종 포털과 SNS에는
관련 키워드와 클립영상이 도배된다.
방송에 나온 만두집을 알아내고자 수많은 네티즌의 팩트체크가 펼쳐지고
내일이면 그곳은 성지가 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자미식회뿐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맛집이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하곤 한다.
먹방, 맛스타그램, 핫플레이스 등이 넘쳐나는 미식의 시대
우리에게 매일 같이 맛을 좇고 찾아 나서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의 하루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식적,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힙’하다는 맛집을 습관적으로 찾아 나서기 마련이니까.
선천적으로 음식을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맛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대하다.
좋게 표현하자면 그런 거고 맛을 잘 볼 줄 모른다가 더욱 맞는 말일 것이다.
온갖 미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맛난 걸 찾기란 그래서 더욱 곤혹스러운 선택이기도 하다.
맛을 좇는 것을 넘어 맛에 쫓기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힙’한 것을 먹기 위해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지만 사실 그게 늘 맛나지도 않았다.
마땅히 내가 지불한 가치에 상응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언짢은 감정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나의 본심이었다. 모두가 맛의 감별사가 되어가는 사이,
오히려 나의 미각은 기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점점 더 퇴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근래 내가 가장 맛나게 먹은 음식이 하나 있다. 아는 언니가 전해준 새우만두가 그 주인공이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는 언니는 빚다 보니 멀리 사는 가족과 친구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고 한다. 부산으로 시집간 둘째 언니부터 늘 자신의 술친구가 되어주는 연신내에 사는 후배, 대학로에 사는 십년지기 친구 등 자신도 모르게 열댓 명의 만두를 빚고 있더란다. 이미 시작한 일, 멈출 수 없었다는 그녀는 그렇게 새우만두 200알을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는 이야기를 승전고를 울린 장군의 무용담처럼 펼쳐냈다.
위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야 우리는 만두 10알씩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만두인지 재차 설명한 후 이런 건 ‘노나’ 먹어야 더 맛나다며 전해주러 온 것이다.
나를 위한 밥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던 게 나였다. 그런 나를 나보다 더 생각하며 만든 만두였다.
이영자 김치만두의 아삭아삭함 대신 새우의 탱글탱글함이 살아있는 만두엔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진짜 맛이 담겨 있었다.
다큐멘터리 <요리인류>로 유명한 이욱정 PD는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음식을 통해 맛있는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미각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그러나 맛이 주는 자극에만 함몰되기에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운 맛이 남아 있다.
이 아름다운 맛은 혼자 간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맛이 전하는 행복은 사람과 사람들에게 이어질 때만이 가능하다.
만두 한 알이 그저 단무지와 함께 베어 먹는 ‘만두’로 끝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장진우와 제이미올리버가 말하는 '미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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