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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는 참 예쁘구나 Nov 04. 2015

외로움, 괴로움, 깨달음 그리고...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던 어느 날

로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아무런 지인도 없이,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서있는 일. 생소하다. 알지 못한 일들을 처음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 전화도, 카드도, 심지어 가는 길도 모르는 곳에 우뚝하니 서있었을 때. 5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으며 목놓아 울고 싶던 십 년 같았던 일 분. 처음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들었던 내 마음. 외롭다. 벌써 보고 싶다. 그립다.


괴로움,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일. 이력서 돌리기. 가게마다 들려서 나를 알려야 했던 그 날. 하기 싫은 마음보다 해야 만한다는 마음이 더 커지길 바랬던 그런 날.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일.  먹고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숙제인 걸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때. 

다른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해주길 절실하게 바랬었어. 하지만 곧 괜한 사치였다는 걸 깨달았었지. 이미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극심한 외로움과 괴로움, 그리고 게으름. 매일 용기가 나지 않아 외출조차 하지 못했어.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곤 했지. 굳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괜히 혼자 찔려서는 먼저 말하고 다녔던 거야. 그랬더니 진실된 이야기 하나조차도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리더라. 캐나다에서의 삼 개월은 솔직한 내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일 수 없었어. 나는 나를 더 작게 만들었지. ‘무서워,’ ‘나는 나약한 걸?’ ‘나는 이겨낼 수 없을 거야,’ ‘한국에 가고 싶어.’ 낮아져만 가는 나의 자존감은 땅 속으로 숨어 들어가기 바빴어. 자신 있게 소리치며 ‘외국에서 살고 싶다.’ ‘잘 살 수 있다.’ 라며 자부하고 자만했던  그때의 나에 대한 미움과, 가볍게 내뱉어버린 말들이 주었던 무거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십 개의 눈들이 나를 더 짓누르고 있었지.


깨달음,

잠을 설치다 못해 고도의 긴장감 때문에 이를 깨무는 잠버릇까지 생겼어, 내가. 생각보다도 더 예민하고 소심하고 약한 사람이었던 거야. 여태 계속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살았던 걸 몰랐던 거지. 누가 알았을까? 나도 몰랐던 난데. 끔찍한 내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고 나니, 정말 그렇게 살기가 싫었어, 더 이상. 후에 당당하게 ‘잘 다녀왔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 ‘너무 겁이 나서  도망쳤어’라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더라, 내가. 

목표를 정했지. 하루에 5장만 돌리자.


그리고 행동,

사실 그것조차도 힘이 들었던 것 같아. 특히 첫 문을 여는 일.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일을 내가 하게 되다니. 그것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은 그곳에서. 약 한 시간을 망설이며 걷기만 하다 크게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갔어. ‘이력서를 내고 싶습니다,’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세 문장 말하고 나오는 데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이 일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지. 진짜 쉬운 일이었던 거야. 한동안 그냥 멍하니 서있었어.  그동안 내가 나를 정말 믿지 못했었구나 생각했지. 여태 고생했던 내 시간이 정말 억울하기까지 하더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고비를 넘기고 시작을 했다라는 쾌감까지도 느꼈어. 나 자신이 고맙고 뿌듯하고 장해서 복잡 미묘한 눈물이 다 나더라고. 그렇게 혼자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 이후로는 진짜 열심히 이력서를 돌렸었어. 일주일 후, 연락이 왔지. 그것도 캐나다에서 이름 좀 날리는 카페 두 곳에서. 진짜 행복하더라. 1차 전화면접, 2차 매니저 면접, 3차 오너 면접을 보는데 다들 내 절실함을 보았었나 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약 9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지. 


하지 못했었다면 크게 잃은 것들이 더 많았었을 거야. 하지만 나는 해내었고 이겨내었던 거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어. 그곳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거든. 그들과 함께 행복했고, 울고, 웃었지. 내가 겪은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해.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었거든, 내가.


사진출처: 히죽히죽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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