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청춘을 다 보내고 늙은이가 된 친구가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시인이 되었다.
소낙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날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늙은 시인이 내민
시 한 편을 대청마루에 펼쳐놓으니
열 칸 기와집에 홀로 앉아서
아랫단까지 젖은 늙은이의
중얼거리는 슬픔이 보였다.
늙음이란 지난 기억을 씹는 애잔함 일진대
군에서 평생을 바친 친구는
무엇이 그리워서
시인이 되어 노래를 하는지
아직도 그리움은 산처럼 높고
쓰러지는 대나무처럼 푸르기만 한데...
쿨럭 거리는 기침에 야윈 몸을 움츠리며
거친 손으로 백발을 넘겨본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는 굵어져서
샛강을 만들고
버드나무 잎을 날리는 바람에
못다 한 기억들이 조각으로 흩날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