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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래 May 29. 2024

두 번째 끊은 정신과 약

첫 번째 약 이야기


50대 중반이었던가?

그때 처음 정신과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섰다. 혼기가 한참 지난 간호사가 무슨 일이냐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고 은퇴시기를 훨씬 지난 의사가 몇 마디를 묻지도 않고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나 쉽게 처방을 해주었다. 흰 알 세 개가 있는 약봉지를 받아 들면서 나의 정신과 약의 력이 시작되었다.


나는 40대 초반부터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사업을 시작해서

일감이 조금 늘어나면 그때마다 직원도 조금씩 늘어나고 운이 좋게 회사규모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회사규모가 커갈수록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스스로 모두를 감당할 수 없는 레벨을 넘어가고 있어서 겁이 났고 그 겁은  불안으로 진화되어 가고 있었다.

회사 내 작은 사고라도 생기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 초초하기 시작했다. 거래처와 새벽 골프를 약속한 날은 어김없이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벌건 눈을

한 채 거래처와 나서 즐겁다는 듯이 "껄껄" 소리치며 떠들어야 만 했다. 어느 날은 잠이 너무 오지 않아서 평소에 숨어있는 양주를 찾아서 "벌컥벌컥" 마셔도 보았지만 (평소에 내 주량은 소주 1~2잔이다) 술에 취해 쓰러져도 술기운이 남아있는 딱 취한 시간 그 시간까지만 잠을 자다가 술기운에서 깰 때면 정신도 또렷하게 돌아오면서 잠도 사라져 버렸다. 그때부터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긴 밤과 나는 작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어릴 때 이렇게 잠이 없어서 공부했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은 갔을 텐데...

 밤마다 잠을 못 자면 낮은 피곤하고 멍한 상태의 연속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찾아간 동네 조그마한 정신과 개인병원이다. 칠순이

넘은 것 같은 의사는 몇 마디 묻지도 않고 아무 일 아니라고 하면서 약을 쉽게 처방했다. 나는 정신과를 큰 맘을 먹고 왔는데... 약을 주는 간호사는(정신과 약은 병원에서 직접 제조하여 줌) 정신병자를 보는 듯 한 눈빛으로 약봉지를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정신과 약은 약 10년 간이나 먹었던 것 같다. 매일 밤이 오면  "자야겠다"는 신체적 신호보다 의식적 신호에 의해 잠자리에 들기 전 약 한봉을 입에 넣으면 아침까지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있었다. 젊은 시절 항상 잠이 부족해 어느 곳에서나 머리만 누이면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장년의 나이에 약은 먹지만 그래도 머리만 붙이면 잠을 잘 수 있었서 이는 회춘이라도 된 듯 나에게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10년 간이나 약을 먹자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어딜 가도 약부터 챙기고 혹 약이 몇 봉지가 남지 않으면 약으로 인해 초초해지고 그 초초함은 예전의 불안함을 다시 소환하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의사는 돋보기안경을 넘어 빤히 내 얼굴을 보면서 "약을 줄이자" 처음 병원 왔을 때처럼 너무나 쉽게 말을 했다.


나는 "줄이기보다 끊어보자" 다짐을 했다. 10년의 기간 동안 늘어난 약은 세알에서  다섯 알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한알씩 줄였다. 불안과 초초함이 조금씩 나타났다. 약을 줄이면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동네 헬스장에서 PT를 신청했다. PT는 시간 많은 비용이 들어서 큰 맘먹고 등록한 만큼 농땡이를 부릴 만큼 여유가 없었고 그 덕분에 헬스에 충실하게 되었다. 항상 여유 있고 풍성한 장년의 몸매도 조금씩 변화되어 갔고 없었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약도 점차 줄여 가고 있었다. 나의 몸매와 체중의 변화가 되면 되수록 약은 줄여졌고 결국은 끝내 못 끊을 것 같은 약을 중단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약 이야기


이제 나도 그때의 의사처럼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적당히 일을 하고 적당한 노년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사업이란 시작할 때도 쉽지 않지만 손을 놓기가 쉽지가 않다. 회사는 많은 일도 있었지만 조금씩  발전을 하여 사옥을 짓게 되었다. 부지 구매부터 부동산업자들의 농간, 주변 동네사람들의 경계, 등과 사옥을 신축하면서 주변 민원, 시공사의 억지,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자세, 등 수많은 시련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왔다.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많았지만 그때는 그래도 하나, 하나 아니면 하나, 둘

숨을 돌일 수 있게 닥쳤으나 건물을 건축하는 일은  시공허가부터 준공이 끝날 때까지 해결해야 만 하는 일이

총체적으로 밀려왔다.


나는 또 불안해지고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10시경 잠이 들어 두세 시간을 자다가 새벽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출근시간까지 온갖 잡생각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다시 옛날 병이 도졌다"


 예전의 정신과 병원은 찾았으나 의사가 돌아가셨는지 병원이 없어졌고 하는 수없이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두

번째 의사도 첫 번째 의사처럼 대수롭지 않게 약을 처방

해 주었다. 나는 의사와 몇 시간이라도 상담을 하고 내

병을 알리고 싶었 의사는 일반내과 병원처럼 두세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이내 처방을 하고 처음처럼 약을

받아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또 시작한 약은 먹기 시작하자 눈 깜박할 사이에 6개월이 지나갔다. 첫 번째처럼 또 내성이 생기고 먹으면 먹을수록 의존도가 높아져지는 게 느낌으로, 육체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끊어야겠다. 약을 줄이야겠다.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이번은 나이가 있어서 인지  알만

줄여도 가슴이 떨리고 손발에 힘이 없는 듯하다. 곰곰이

생각하다 끊으려면 한알도 먹지 말고 통으로 끊어보자.

독한 마음이 생겼다. 내가 살아온 생이 어떤데 이깟 약에

질까? 스스로 의지를 다잡고 한알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드는지 안 드는지가 아니고 누워서 세상의 돌아가는 모든 일이 잠자리 이불속에서 함께 누워 있는 듯했다. 거실의 냉장고 모터 소리부터 모든 소리가 다 들리고 온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춤을 추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밤새 가수면 상태로 있는 것 같다. 이번은 운동을 하고, 침을 맞고 자기 전 목욕을 하고 잠들기 좋다는 모든 것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낮시간에도 피곤은 하지만 눈을 감으면 모든 게 또렷해지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시 약을 먹기는 싫었다. 이대로 다시 약을 시작하면 이제는 영원히 죽을 때까지 약의 노예가 될 것이다.

사람은 적응을 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가수면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가고 이주차 중반쯤 되었을까 새벽에 깨서 몇 시간이나 딴짓은 하지만 그래도 밤에 조금씩 잠이 들고 점차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약도 끊었다.


가끔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독한 놈"이라고 하며 웃는다.


♧ 정신과를 선택할 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약을 끊기는 처음 선택 때 보다 더 힘들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20대 젊은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들을 잠시

스쳐 갈 수 있었다. 이 글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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