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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5. 2015

밤은 고요하리라Nuit Sera Calme

회고Rétrospection

밤은 고요하리라
Nuit Sera Calme


<인간의 문제> <밤은 고요하리라> 이 두 책은 내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읽었어야 하는데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고 더 이상 그의 다른 작품을 못 읽어 낼 때의 기분이다. 로맹 가리 소설을 읽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그에게 어떤 조언을 구했던 사실을 나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해줄 수 없음을 미안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 책을 빌려 다 말할 테니 스스로 답을 구하라고 다독인다. 고맙게도 말이다! 담화 형식으로 꾸려져 있는데 그것은 결국 로맹 가리 자신이 묻고 답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자신을 까발리고 사라진다.



어머니를 포함한 그의 여인들은 모든 작품에서 빠질 수가 없다. 일로나 제스메는 그가 평생 가장 사랑한 여자였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새벽의 약속>에서도 잠시 등장했던 그녀는 로맹 가리가 결혼을 할 마음을 먹었었던 여자였다. 지난 이야기 중에 하나라 큰 의미를 두지 못했고 그에겐 언제나 진 세버그가 존재하니깐 유일한 사랑이라면 당연히 그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자의 빛>에서도 주인공 미셸의 사랑이 곧 로맹 가리 자신일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의 사랑이 진 세버그라고 하기엔 뭔가 믿기지 않는 베일의 감정을 느꼈었다. 지금에서야 진 세버그가 아닌 일로나였음을 짐작한다. 전쟁으로 갈라졌던 그녀의 소식을 25년이 지난 어느 날 알게 된다. 정신분열로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던 그녀를 만나려 하지만 이내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야 만다.



그는 언제나 나약한 여성을 지켜주려 한다. 평생 한 번의 사랑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랑은 딸에게 애정과 관심을 주듯이 사랑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스스로 '모순 덩어리'라고 했을까! 다만 그에게 모두 소중했다면 아껴주고 싶은데... 이 마음은 뭘까? 배웠지만 일깨워 주는 것 하나였다. 누군가의 소중한 것들을 알아보기 그리고 지켜주기...

사랑에서는 난 타협을 좋아하지 않네. 적당히 수선해서 절뚝거리며 계속하는 것보다 과거의 기억을 구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지.(p246-247)



그의 책에서 드골 장군이 자주 등장하는데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김구 선생님이시다. 세계 현대사와 한국 현대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다시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드골, 맥아더, 마오쩌둥, 스탈린, 김구, 김일성 의식은 프랑스에서 시작이 되나 곧 아시아로 돌아오곤 한다. 로맹 가리는 반항적인 사회 선생님 같았다. 어쩌다 그에게서 역사를 배우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억압받았던 그 시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와 소련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의 양대 국가가 된다. 거기에 저항해보고자 유럽은 정치, 경제, 군대 통합에 나서기는 하나 그 영향력이 거기에 비할 대가 못 됐다.



여기서 난 잠시 무지함에 화가 날 지경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어서다. 난 편협한 책 읽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보완책으로 이웃분들의 깊이 있는 서평을 보며 배운다. 역사와 고전, 세계문학, 한국 현대 소설, 일반교양서 등 그분들은 분야별로 서평의 전문가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 책을 넘어선 주체적인 자아를 느낀다. 지금 내가 세계 역사에 관해서 알고 싶은 것도 보물창고 같은 블로그를 찾아낸다면 좋겠다 싶다.



나의 불편한 감정은 접어두고 그가 이 책을 1974년에 쓰고 41년이 흘렀다. 중국은 그가 말한 것처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성공이 계속되어 탐식 중이다' 경제력이 그 나라의 힘이 되었다. 이제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양대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낀 나라들은 뭐가 되나? 로맹 가리는 유럽의 입장, 프랑스의 입장에 대해 아니 결국 우리 모두의 입장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들추어 내긴 하나 여러 가지를 한꺼번 생각하기엔 내 역량이 부족하고 그저 우리나라가 염려될 뿐이었다. 나라마다 이념 충돌로 전쟁이 나고 분열되고 합쳐졌다. 우리나라는 통일이 될 여러 번의 기회를 중국과 미국과 소련에 의해 잃어버렸다. 그리고 반쪽짜리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안정적인 자리 확보를 위해 전전긍긍이다. 우리도 결국 희망은 청춘에게 있다.....



<밤은 고요하리라>에선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거대한 옷장> <죄지은 축제> <튤립> <징기스 콘의 춤> <유로파> <게리 쿠퍼여, 안녕> <낮의 빛깔들> <마법사들> <스가나렐을 위하여>... 아직은 못 다 읽은 책들이 있고 앞으로 번역될 책들을 생각하면 즐겁다. 나를 또다시 어디로 밀어넣을진 모르겠지만... 로맹 가리는 술도 마약도 하지 않았다. 진 세버그와의 사이에서 딸을 잃었을 때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으나 그의 작가로서의 기질을 막는다는 걸 깨닫곤 그 약마저도 끊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언제나 마무리 지어야 할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그렇다고 그의 피의 형제들을 써먹지는 않았다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오랜 친구이자 기자며 작가인 프랑수아 봉디가 묻고 로맹 가리가 답하는 대담 형태이나 실제는 가상 대담이다. 로맹은 하고 싶었던 말을 위해 질문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회고록이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관직 15년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다소 무겁고 황당스럽고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관해 들려주고 있다. 도덕적 양심과 프랑스의 대변인으로서의 갭이 컸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무너졌음을 시인한다. 미국에서의 영화제작을 하는 동안 자주 만난 사람들 그들을 좋아했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름을 무척 잘 만들고 잘 외우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불린 이름의 수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300명은 넘지 않을까? 이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그의 작은 배려 또는 증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포스코 시니발디란 가명으로 낸 <비둘기를 든 남자>를 가리키며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얘기를 한다. 그가 자신의 '자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는데 이해할 순 없었지만 소설가로서 그가 느낀 고통을 말하는 듯했다. 소설을 시작한 이유 자신이 없는 길로 타인을 보기 위한 또 다른 실체에 머물기를 원했던 것은 자신 안의 큰 결핍을 메우기 위했음을 밝힌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자신이 되려고 애쓰는 것을 자기 작품 속에 집어넣고 나머지는 자신이 간직하기 때문이지..(p236)



인상 깊었던 건 그가 보는 젊은 세대인데 관점이 아름다웠다. 역사 속에서 자기 삶을 견디는 대신 표현할 욕구가 이렇게 강렬했던 적이 없다고 아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고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연기하려는 욕구를 본다고 삶을 의식화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청년들에게 억지로 고전극을 연기하도록 요구할 뿐이란다. 실제로 체감하는 나도 주체적인 삶 밖으로 밀려나는 이 기분은 정말 암담하다.

인간이 밥벌이에 종속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야. 인간을 출근부로 전락시키는 일이지. 인간을 사회 기계 속으로 집어넣고 은퇴자나 시체 상태로 만들어 반대쪽 끝으로 토해내는 거지. (p97)



대담은 끊김이 없고 의식은 흐른다. 친구와의 소박한 대화라고 하기엔 고차원적인 대화라 감히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로맹 가리의 친구 '테야르 드 샤르뎅'과 '앙드레 말로'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나의 짐작이지만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았을 로맹 가리를 생각하면 무척 안쓰러울 정도다. 테야르를 보며 <하늘의 뿌리> 예수회 타생 신부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그의 시선에 친구들과의 우정이 느껴졌다. 부러울 정도로.. 내가 로맹에 대해 점점 알아갈수록 내가 이렇게 알아도 되는 건지 되묻고 싶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면 난 숨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족하다....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진실? 무슨 진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진실입니다. 나머지는 다 헛소리!"라고....



로맹 가리가 액자에 간직한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엔 러시아 말로 '저항하는' 이란 의미의 글이 남겨져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저항의 메세지를 작품으로 남겼던 것일까.. 그가 바란 것 하나 인간계 보호, 더 이상 갈 곳 없는 우리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적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작가들의 삶을 떠올려 보았다. 글이란 조용한 외침이다. 더 이상의 갈등은 사라지고 없을 것. 나약함을 옹호하고 수호하고 어떤 것으로부터 저항할 맨손으로 횃불 하나 들어 올린 이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불이 되어준다.

그루초는 그라우치(grouch), 즉 불평에서 온 말이네. 이 불손과 패러디, 강자가 인간적으로 남도록 약자가 끊임없이 강자에게 던지는 이 조롱을 통한 공격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가치도 없네. 강자가 인간적이지 못하게 되는 순간 무력으로써 이 시도들을 금지하기 때문이지. 성스러운 광인들이 있네. 그들만이 무엇이 성스럽고 무엇이 사기인지 우리가 느끼도록 해줄 수 있지. 난 나의 거의 모든 책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네.(p206)



<새벽의 약속>을 읽고 난 뒤 난 그를 두고 오기 참 어려웠다. 황량한 길 위에 어느 방향으로 한발 내디뎌야 될지 모른 채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며 돌아서야만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냥 아쉬웠었다. 실제로 로맹 가리가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있을 때 이 책이 쓰였는데 그는 그때 이미 자신이 더 이상 안주하지 않고 떠나야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여성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 또한 오류를 범한 걸 인정한다. 그는 그 길 위에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다른 곳, 다른 것, 다른 누구를 찾아....

난 마흔여섯 살이었고, 나 자신과 일에 너무 안주해왔지. 영원히 나 자신과 타성에 빠질 위험이 있었어..(p255)



난 이 책을 뽑아 먹을 수 있을 만큼 뽑아 먹었다. 식탐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당신의 책 아니 작품을 모두 먹어치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이 책을 읽어보도록 하겠다. 그러면 내가 몰랐던 걸 알 수 있을까? 언제나 답해줬을지 모르지만 모르는 경우도 있다. 끝으로 향할 땐 내가 뭘 읽는지도 모르게 끝이 나버렸다. 아쉽다. 이 책이 당신의 마지막을 가리키니깐 나는 몹시 침울해졌다.    

누웠을 때 나는 귀를 기울였고, 망을 봤고, 열쇠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네. 문이 다시 닫혔고, 그녀가 부엌에서 꾸러미 여는 소리를 들었네. 그녀는 내가 있는지 보려고 나를 불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나는 미소 짓고 기다렸지. 나는 행복했네. 속으로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났지........ 아주 생생히 기억나.(p309)





# 미래

청춘

기독교적 몸짓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스스로 장인이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이고서 삶으로 체험되는 예술적 표현 방식을 찾는 젊은이들이 생겨난 거지. (중략) 이 새로운 체험 예술의 욕구는 비현실 속으로 도피하지 않고 삶의 방식을 찾네. 밥벌이에 종속되는 삶을 더 이상 원치 않는 젊은이들이 있지.(p97)


인간의 몫

우리는 인간에게서 상상의 몫을, 신화의 몫을 훔쳤고 그 결과 '진짜' 인간이 아니라 신체가 절단된 불구의 인간을 낳았지. 왜냐하면 시의 몫 없이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네. 그건 사실주의의 지배가 아니라 제로의 지배지. 그런데 상상계 없이 지낼 수 없는 인간의 몫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사랑의 몫이네.(중략)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란 무엇보다 서로를 만들어내는 두 존재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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