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열렬한 포옹이 그립지 않은가? 하는 물음을 던져 준 책이었다. 나도 무척 그런 면에서 애정 결핍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는 꼭 안아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데.. 왜 어른이 되고 나면 두 팔 벌려 한참을 꼭 안아주지 않느냐 말이다!!! 이런 투정어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비정상인가요? 흠흠.. 묻고 싶지만 묻지 않는 걸로..
이 책은 로맹 가리 작가가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탈피한 첫 번째 책이다. 아시다시피 그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내 콩쿠르상을 유례없이 두 번 수상한 경력이 있다. 머리말엔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보다 주인공 쿠쟁을 먼저 탄생시켰다고 한다. 에밀 아자르는 출판담당자로 그 임무가 맡겨졌을 뿐이란 거다. 쿠쟁을 대변할 가짜 태생인 에밀 아자르는 삼십 대 신인 작가의 탈을 썼던 터라 글의 일부분이 삭제되는 굴욕을 맛본다. 이때 로맹 가리는 이 책을 세상에 내는 쪽을 택했고 과감히 삭제를 수락한다. 이런 설명을 상세히 들려주고 있고 삭제된 그 부분을 살려 책의 뒷부분에 실려있다. 왜 삭제시켰을까? 하는 궁금증이 해소되길 바라며 읽었다.
쿠쟁은 아프리카 비단뱀을 '그로칼랭'이라고 부르는데 그로칼랭은 '열렬한 포옹'이란 뜻이다. 그는 비단뱀을 보는 순간 운명을 느낀다. 이 미터 이십 센티미터가 되는 커다란 비단뱀을 파리의 자기 서식지로 데려온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그로칼랭을 두르고 호흡이 멈출 정도로 꽉 안겨있기를 즐긴다....
서른일곱 독신남인 쿠쟁은 숫자에 민감한 통계 일을 하는 샐러리맨이다. 하루 종일 엄청난 숫자에 파묻혔다 집에 돌아오면 0(제로)가 되어버린다. 그는 소심한 성격 탓에 그로칼랭에게 줄 살아있는 생쥐를 줄 수 없어 고민하고 신부님을 찾아 상담하기도 하며 짝사랑하는 회사 동료 드레퓌스 씨(흑인 여성)에게 말 한번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12층짜리 건물 엘리베이터에서의 짧은 만남을 무슨 여행쯤으로 생각하며 그녀와 함께 하는 어떤 것을 상상할 뿐이다. 그런 그의 성격 탓에 점점 그로칼랭에게 깊은 애정을 쏟는다.
쿠쟁 아니.. 로맹 가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연약한 것들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책 읽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낙태되는 아이, 먹이로 던져지는 생쥐, 전쟁 희생자... 그러니깐 공포가 깃든 유기체들에게 말이다. 첫장의 문구는 <...... 국립 의사협회는 낙태의 자유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듭 표명하며, 입법부에서 낙태를 허용한다면 그'과업'은 '특정한 집행 인력'에 의해 '특별히 지정된 장소', 즉 '낙태소'에서 시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1973년 4월 8일 자 신문>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읽기 시작할 때부터 이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출생 이전의 상태와 중고 인구, 잉여 분 감정 해결에 몰두하는 쿠쟁이 애정결핍인 채로 끝이 나는 건지 궁금했다. 독신자들이 주로 받는 심리치료 등을 받기도 하지만 그로칼랭에게 더 원하는 것이 많아졌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주도하에 우정 나누기를 뜬금없이 끊임없이 타인에게 시도한다. 이 모든 행위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자 함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비단뱀을 애완동물로 기르는 사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나는 쿠쟁이 되어 그의 기록물을 읽어 나갔다는 사실이다. 애정결핍은 누구나 다 있으니깐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1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2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쿠쟁은 그로칼랭이 되어버렸다.
"나는 뜻을 모르는 표현을 자주 신중히 사용해. 적어도 거기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이해를 못하면 가능성이 있는 거야. 그게 내 인생관이야. 나는 항상 주위에서 모르는 표현을 찾지. 그러면 적어도 그게 다른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p273)
로맹 가리는 탈피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그에게 위안되었을까? 그는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다만 가면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그것(가명으로 다시 주목받는 점)을 통해서 창조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기분전환 겸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읽을 <가면의 생>과 <밤은 고요하리라>를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참이다..
인간의 존엄
생쥐를 무더기로 사세요. 알아보기 힘들어질 겁니다. 생쥐를 하나씩 인식하니까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개성이 생기는 거지요. 개성 없는 다수로 받아들이면 훨씬 인상이 희미해질 겁니다.
쿠쟁, 어린아이의 습관
나는 혼자라는 느낌을 덜기 위해 숫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열네 살 때는 많은 수 가운데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기대로 수백만까지 세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 마침내 통계 일을 하게 되었다. 큰 수가 적성에 맞는다는 얘기도 들었고, 불안을 극복하고 익숙해지고 싶을 때 통계는 불안에 대비하고 습관을 들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내 서식지 한복판에 혼자 서서 두 팔로 내 몸을 꼭 껴안고 살짝 어르는 모습을 니아트 아줌마에게 들켰을 때 그것이 어린아이 습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 창피했다. 그로칼랭과는 더 자연스럽다. 그로칼랭과 마주쳤을 때 나는 곧바로 내 감정적인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것을 알았다.(p95)
우정의 잉여분
어느 시대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어찌 된 일인지 우리에게 순환 체계가 없는 탓에 그 인심과 우정의 잉여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문제의 큰 강이 비뇨기관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안에서 보이지 않게 열린 놀라운 열매가 썩어 내부로 떨어지는데, 그것을 전부 그로칼랭에게 줄 수는 없다. 비단뱀은 지극히 절식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생쥐 블롱딘은 필요한 게 많은 동물이 아니고, 움푹한 손바닥만 있으면 족하다. 가혹하게도 내 주위에는 움푹한 손바닥이 없다.(p190)
존재
0을 향해 갈 때는 자신이 점점 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느껴진다.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더욱 잉여가 되어버린다. 가장 작은 것의 특징은 초과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무에 가까워지면 곧 잉여분이 된다. 자기 자신이 점점 덜 느껴지면 무슨 쓸모가 있으며 왜 있어야 하는지 문제가 된다. 중량 초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닦아내고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그것이 부재로 인한 정신 상태이다.(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