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되돌아본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작가 로맹 가리는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 상인 공쿠르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책에서 옹호한 자유와 인간 존엄의 이상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 사이에서 몹시 고뇌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한 바 있다. 그가 다시 1975년 가명 에밀 아자르의 두 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그 해 공쿠르상을 또 수상 받아, 한 작가에게 평생 한 번밖에 수여되지 않는 공쿠르상을 유일하게 두 번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그는 1980년 12월 2일 파리의 자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유서 '결전의 날'을 비롯해 1년 뒤 1981년에 발표된 로맹 가리의 유고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로맹 가리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익명성을 선택함으로써 프랑스 문학계를 넘어 전 세계에 큰 파문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그가 에밀 아자르가 되어 쓴 첫 작품 <그로칼랭>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그 작품을 썼을 당시 가명 에밀 아자르보다 <그로칼랭>의 주인공 쿠쟁을 먼저 탄생시켰다. 쿠쟁은 아프리카 비단뱀을 '그로칼랭'이라고 부르는데 그로칼랭은 '열렬한 포옹'이란 뜻이다. 서른일곱 독신남인 쿠쟁은 숫자에 민감한 통계 일을 하는 샐러리맨이다. 쿠쟁 아니.. 로맹 가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연약한 것들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책 읽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에밀 아자르로 <그로칼랭> 집필하기 전 로맹 가리 자신은 <밤은 고요하리라> 작품의 회고록을 남긴다. 이것은 거의 끝에 다다랐음을 시인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가 진 세버그와의 결혼 생활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녀의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비춰 진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은 또 한 번 분신 속으로 빠져들어 작품을 남긴 그 저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앞의 생> 만큼 <그로칼랭>이란 작품도 너무 좋았고 콩쿠르상을 먼저 탈 뻔했다고도 한다. 로맹 가리는 자신은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작품처럼 종착점을 향했으나 가명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에 또 한 번의 탈피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이런 조율 속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 이기도 한 <자기 앞의 생>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무엇일까. 불쌍하면 무엇이 불쌍한지에 대해 묻고 싶다. 그들이 왜 불쌍한가. 생은 다 그런데, 무어라고 이 작품의 주인공들을 불쌍하다고 여겨야만 하나, 다 생은 그렇고 그런데... 이건 나의 지독한 회의주의적 시각이다. 생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 모모가 되어서 그는 말한다. 자신이 지켜주고 싶다고...
산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이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일 테다. 뭘 그리 대단히 알고 있느냐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모모는 최선을 다해 그녀와 작별을 했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이 책으로 시작해서 <새벽의 약속> 읽게 되었고 로맹 가리의 팬의 되었다. 그의 작품을 이어서 읽었고 잊히면 꼭 다시 만나러 갈 테다. 브런치의 글을 옮기면서 <자기 앞의 생>은 남겨 두었었다. 이제야 이작품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을지 되돌아보았다. 가슴 찡해진다... 몇십 년 뒤에 다시 재독 하고 싶다.
[작가, 로맹 가리 1914 ~ 1980
[모모, 슬픔에 가려진 것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이고 무언가를 요구하겠지.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걸 요구해야지. 진짜 그럴듯한 걸로. p116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p148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 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 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