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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4. 2015

솔로몬 왕의 고뇌 - 에밀 아자르

사랑Amour_L'angoisse du roi Salomon

당신의 사랑Amour......
솔로몬 왕의 고뇌
L'angoisse du roi Salomon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나는 훌리아아주머니와 결혼했다>작품에서 닉네임 훌리아를 가져왔다. 책과 지금 막 결혼했다. 훌리아가 되었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는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던 것 같다... 이제 아자르의 마지막 작품을 마주 보게 되었다. 그의 <자기 앞의 생>을 계기로 지금까지 그들의 책을 이어서 읽어왔다. 꽤 멋졌다. 많은 것을 이해했다. 마음의 공간에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게 되었다. 닮아가고 싶었다. 꽤 멋졌으니깐 단순한 마음으로 그랬다. 이번 리뷰는 책과 상관없을 정도로 그냥 나의 기록이다. 풍요로운 오독誤讀이기를 바란다.


빚을 진 사람은 누구일까? 솔로몬 씨는 옛 명함에 '솔로몬 루빈스타이, Esq.'라 쓰여있다. Esq는 이름 뒤에 쓰는 경칭인 '에스콰이어 Esquire'의 준말로 양질의 인간을 가리킨다. 그는 옛 명함을 택시기사에게 건넨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자선사업을 도와줄 것을 바라며 택시 할부금 만 오천 프랑을 빌려주겠다고 백지수표에 사인을 하고 건넨다. 택시기사는 그에게 빚을 졌다.
 
 
에밀 아자르는 <가면의 생>이 마지막 책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이후 <솔로몬 왕의 고뇌>를 쓴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아래 도입 글은 로맹 가리의 육성처럼 느껴졌다. 로맹 카체브는 필명으로 로맹 가리, 가명 에밀 아자르로 집필해 왔다. 작가로서의 숙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그가 저지른 일은 그에게 올무가 돼버렸다.
 
 
어느 순간 이젠 너무 늦었다는 자각,
삶이 결코 우리의 빚을 갚아주지 않으리라는 것 깨닫는 때가 오는 거야.
그래서 고뇌가 시작되는 거지.
 
 
 

모든 단어에 어떤 의미라도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면의 생>을 읽기 전과 후가 확실히 달라졌다. 그 책을 읽기 전엔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 누구의 고뇌인지 알 수 없었다. '장'은 택시기사이면서 배관 수리공이기도 했다. 독학으로 공부하며 사전을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단서 중 하나는 솔로몬 씨에게 만 오천 프랑을 빌리게 된다. 택시기사는 로맹 가리 자신일 것이다. 아담인지 이브인지 가리인지 아자르인지 모를 그 두 사람은 바꿔서 살아보기로 한건 아닐까. 누구를 위한 자선일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눈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사전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를 찾는 거라고.(p181)


 
여든네 살의 솔로몬 씨는 기성복 사업-특히 아랫도리 바지 제왕-을 은퇴하고 자선사업 후원 중이다. '봉사의 구조회' 협회에 자신의 아파트 일부분을 내주었다. 언제든 그곳으로 전화를 하면 고뇌하는 자들은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봉사자는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더 낫다는 위안을 받으려 하면 안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 왜 하필 기성복인가?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럭키가 새 모자를 쓰고 나올 때가 떠오른다. 솔로몬 씨의 기성복 바지과 럭키의 모자는 같은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게 너무 낡고 진부해지면, 시대의 취향에 맞추어 새로 만들어낸다. 그들(작가)이 보는 세상은 전진하는 문명과 파도와 같이 밀려오고 사라지는 인류인 것일까? 솔로몬 씨가 솔로몬 왕이 되었던 이유는 사라진 것들의 대표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솔로몬 왕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는 성전을 건설하고, 전차 군대를 정비하고, 동맹을 확고히 했지만,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무無로 돌아갔다.(p65)


 
시공간을 비튼다.는 의미를 나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여러 번 비틀어 보았다. 원래의 '나'는 변하지 않았고 다만 겉모습은 서로가 뒤바뀌었다. 택시기사 '장'은 그의 친구들 '척'과 '통'을 포함해서 왜 고용된 지 모른 채 솔로몬 씨를 돕니다. 아자르가 몰랐던 것처럼 가리도 모른 채 아자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자르의 책이다. 아자르의 계획일 것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삶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화가 나기도 했을 테다. 시시때때로 경멸의 시선으로 그를 보기도 한다. 고뇌를 멈출 수 없다. 가리는 아자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구조활동을 벌여왔는지 체험하게 된다. 드디어 둘의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나의 오독을 경계해야만 옳지만 허물고 싶다... 이 책은 한 택시기사와 한 노인의 이야기다.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자신에 대해 알아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최근(1979) 삼십 년 동안 알게 되었고, 그게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는 겁니다.(중략) 그것이 '바로 우리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p24)


 
'장'-'자노'라고도 불림, 라팽 클로드 부종의 동화에 나오는 아기 토끼-은 솔로몬 씨의 부탁으로 혼자 외롭게 사는 늙은 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문을 시작한다. 때때로 그가 원하는 장소로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을 엿보기도 한다. 오래된 엽서 수집과 엽서에 남겨진 글들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단 한 번도 사랑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 솔로몬 씨는 절대 고독에 휩싸여있다. 처음부터 혼자였다. 지금까지... 그는 이제 여든네 살의 노인이며 생이 얼마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라져버릴 사람들...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다.

망각 속에 매몰된 이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하고 살다가 아무 흔적 없이 죽어간 이들을, 과거에 누군가로 살다가 이제는 무無와 먼지가 되어버린 존재들을 견딜 수 없어했다는 사실을..... (p33)


 
 틈날 때마다 솔로몬 씨는 '그 누군가'가 해오던 선의를 똑같이 보여줌으로써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 누군가'를 대행해 아자르는 그에게 어떤 깨우침을 주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누군가'를 위한 후한 선심일까? 과거 자신의 작품 속의 주인공을 소환하여 다시 어떤 무대 위로 밀어 넣은 것일까? 아니면 어떤 책임감? 애착? 그래서 못다 이룬 사랑을 완성해 보려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위험에 빠진 사람들 돕기를 게을리하는 죄를 늘 짓고 있지 않나. 대개의 경우 누가 위험에 처해 있는 지도조차 모르고 있네.(p86)



솔로몬 씨가 아는 코라 라므네르-코라(Cora)는 고대 그리스어로 '처녀, 아가씨'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과거에 유대인 숨겨줬다. 장을 통해 솔로몬 씨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곳곳에 아자르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새롭게 재발견...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 당신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요... 코라의 본명은 케리모디-케리모디 저주받음 마음이란 뜻이다- 그녀는 불운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장은 그녀의 예순다섯 나이는 잊어버리고 연민 어린 시선을 건네다 보편적인 사랑이란 이름 아래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
코라 :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p70)
장 : "당신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어요. 당신이 그걸 깨닫기만 하면 되는데....."



코라와 솔로몬(재회) / 코라와 장(고뇌) / 장과 알린(희망)- 이들의 관계를 보며 떠오른 건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였다. 솔로몬과 코라와 장 모두가 가리 자신이기도 했고 서로의 대신代身이기도 했다. 1963년 로맹 가리 49세의 나이로 24세 연하의 배우 진 세버그와 사랑은 유명하다. 




1979년 진세버그 불운한 죽음 그 해 로맹 가리 나이 65세로 솔로몬 왕의 고뇌가 출간되었다. 로맹 가리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 진 세버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사랑했을지 그녀와 자신을 바꿔서 자신이 스물다섯 장이 되어 예순다섯의 코라를 사랑해보고 또 이제는 영원히 침묵한 그녀를 26세인 서점 아가씨 알린과 장이 만나 사랑하고... 한순간도 잃고 싶지 않은 그가 적당히 넘어가는 일 없는 그가 할만한 일이다..
**
알린 : "당신이 행복해한다고 해서 삶이 당신을 벌주진 않아."(P239)
장 : "저한테 재능이 있다면, 그런 노래들을 행복한 내용으로 만들고 싶어요."(p260)

 

 
 
상상해봐
소녀야, 소녀야
상상해봐
그것, 그것,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걸
그런 계절
그런 계절
사랑의 계절이
그러나 그건 너의 착각
소녀야, 소녀야
그건 너의 착각
 
 


고뇌의 시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장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동물적인 자력이 있는 장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부족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나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일류도 아니었던 익명의 사람들의 죽음을..... 아직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냥 추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다수의 사람들 그 속에 나를 보게 된다. 두려움조차도 아직 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지만 멀지 않아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어딘가에 놓인 나의 이야기....  실감할 수 없지만.... 시시때때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삶에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p83)



로맹 가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뇌했었던 거 같다. 어쩌면 더, 더, 더 나아가 끝없이 살고 싶은 자신의 집착과 극도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아자르를 자연사라는 삼 등급 죽음을 면하게 하고 안락한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한 마지막 수행처럼 도 느껴졌다. 그가 소유의 상실을 두려워했을까? 아마 변질을 더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그는 작품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생각하는 것을 거부했다. 유서에 모든 것을 표현했다고 말한 의미는 그것이었을까? 그는 작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 나머지가 본인이라고 가리켰다. 작품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일까....

목을 매기 전 그는 솔로몬 씨에게 은신할 샹젤리제의 지하실을 마련해주었고, 그 일로 해서 그들 사이에는 영원한 감사와 우정의 유대가 생겨났다.(p83)


 
그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한 종족의 멸종이었다. 인류는 연속해왔지만 우리는 멸종되어가고 있는 짐승 떼와 전쟁, 기아, 테러... 등을 지켜보고 있다. 결국 살아남은 인류가 없다면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100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빚을 진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았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더뎌졌다. 읽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가 나에게 남겨준 것을 생각했다. 고뇌를 독학하는 장의 모습이 이제는 나로 보였다. 이제야 책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의미가 가득한 단어들, 정신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간을 그가 나에게 주었으나 그는 나를 밀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마저도 고맙다.....

시간은 아름다운 배설물, 새끼 바다표범을 죽이듯이 살아 있는 채로 당신의 껍질을 벗긴다. 그 순간 나는 멸종 위기의 고래들을 떠올렸다. 왜 그랬겠는가. 멸종 위기에 놓인 것 중에서 가장 거대한 것이 아닌가.(p88)



가리는 무감각한 상태, 그런 상태... 자기 초월을 생각할 만큼 절망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서 안식처를 찾지 않을 그가 아자르의 존재 자체에 안심하고 오래 존재할 그를 보며 자신의 앞날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자르에게 희망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그가 꿈꾼 게토-중세 이후 유대인들을 강제 격리시킨 지역-의 생활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는 기성화된 꿈을 이룬 것일까? 시대에 안성맞춤인 그런 작품이 되었기를 바란다. 2015년 06월의 어느 날, 당신의 고도가 '그것'을 읽었다.

"난 괜찮소, 여기 살아 있소. 누가 무슨 얘기를 하든 아직 죽지 않았소. 자네에겐 커다란 고뇌가 있군, 젊은 친구."(p246)
바람이 분다! 살아보아야겠다! 거대한 바람이 내 책을 열고 닫는다. 내 말을 믿는다면, 그대 현재를 살아라,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라, 바로 오늘 삶의 장미를 꺾어라!-불멸의 시구-(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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