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같이 노란 권태와 지랄같이 눈부시게 푸른 권태 사이를 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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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런 책을 두고 나는 단숨에 읽지 못하는데 읽어야 될 때를 한 참을 미루고 미루다 정말 다른 놀이가 지쳐서 권태감이 몰려와서 더 이상 '너' 아니면 다른 게 할 게 없어-라고 할 때까지 정신없이 쏘다니다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읽었던 <칠레의 밤>이었다. 정말 우르티아 신부에 대한 뭐 아무렇지 않은 무덤덤함만이 있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함은 곧 나에게 닥치겠지 그러나 어떠한 예감 없음을 느꼈다. 왜냐면 작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서 접근한 책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다리 청년에 대한 마지막 건조한 이야기에서 나를 눈물 펑펑 쏟게 하는지 좀 의아했지만 뭐 충분히 알아들었다. 이런 작가였구나 그런 소감을 말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맞는 독서 방향을 찾아서 여기까지 도달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다음 두 작품을 더 보면 어쩌면 한 해가 다 가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2023년 2~4월까지 두어 달 동안 독서패턴은 조금 나에게 허탈감을 주어서 이제는 한 작가의 3 작품을 골라 읽는 것으로 했다. 앞으로 더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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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나서 이 책이 왜 나를 눈물 펑펑 쏟게 했나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에서 권태감을 갖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개인사에서 국가사까지 두루두루... 내 나이 20대에서 40대까지 짧다면 짧고 어느 정도 살아보았다 하면 살아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갈수록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변화 없음과 제자리를 느낄 때를 체감하고서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에 인정할 때인가 싶을 때... 그러니깐 그 늙다리 청년이 누구냐고 했던 것처럼... 그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어서 좀 슬퍼지려고 했다는 거다. 무척 그 늙다리 청년이 나였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우리 시대가 꼭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아니어도 또 다른 모양으로 흡사하게 재해석되어서 반복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리고 나는 왜 이 권태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것 또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