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예림 Aug 05. 2020

집 밖으로 나오면 일이 더 잘 되나요?

아이폰 일기 9월 13일 (성수동 4F)

어젯밤은 연휴 첫날이라서일까. 기분이 한가로웠다. 연휴는 좋다. 무엇보다 이 단어가 주는 해방감이 좋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나쁘지 않은 단어이다.

평소대로 웅이와 함께 각자의 장소로 일찍이 출근을 하였다. 할 일은 있었지만 어제는 어째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출근 루틴이 있다면 옥상으로 올라가기 전, 같은 건물 1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주문. 손에 딱 들고 3개 층의 계단을 올라 옥상에서 오도카니 잠자고 있던 작업실 문을 여는 것이다.

커피를 받기 전까진 바리스타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잡담을 한다. 거의 매일 만나는 이웃일수록 할 말이 많다는 게 정설.
너무 바쁜 러시 타임에는 슬쩍 눈인사만 건네는 것이 전부인데 (아주 약과지만) 사회성을 유지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언제든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기가 필요하다.
아무튼 난 홈오피스 체질은 아닌 듯하다.

좀 더 내 작업실 이야기를 하자면.
옥탑이 다 그러하듯, 외적으로는 작고 안에는 하얗다. 작은데 그나마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나름 방도 두 개. 아주 작은 1번 방에는 책을 잔뜩 쌓아두었고. 덜 작은 2번 방에는 기다란 데스크가 놓여있다.
데스크는 이동이 간편한 타입이어서 계절마다 위치를 바꾸면 기분 전환이 된다. 작은 방의 팁이라면 팁.

바닥은 흰 타일을 깔아 두어 먼지가 자꾸 거슬린다는 점 빼고는 아주 맘에 든다. 발바닥이 닿을 때마가 서걱서걱한 시원한 감촉을 좋아해 겨울은 힘들어도 여름을 생각하면 참을만하다.

그 외에는 썰렁하다.
애초에 돈들이고 공들이지 말자가 이 공간의 목적이었기에 나름 잘 지키는 중이다. ㅎㅎ


이 곳에서 하는 일은:


1. 작사 작업


2. 다른 노래 듣기
(작사 일이 딱히 없는 날에는 주로 디깅/리서치를 한다. 그저 많이 듣기. 가령 다른 곡들을 집중적으로 듣고 아카이빙을 실천 중.)


3. 로우키 뮤직 블렌드 작업
(한 달에 4일가량은 뮤직 블렌드를 에디팅 하는데 쓰는 것 같다.)


4. 단어, 문장 추출 작업
(영화 대사, 스크린샷, 독서 중 밑줄친 부분을 다시 노트북에 타이핑으로 옮긴다. 부지런하자를 되뇌며. 카테고리를 잘 나눠 저장해두어야 질 좋은 가사 소스가 된다)


5. 휴식
(간이 소파처럼 사용할 요량으로 가져다 둔 큰 쿠션. 기대어 쪽잠도 청해보고, 1층 카페에 내려가 책을 읽거나 멍 때리거나. 넷플릭스를 틀어두고 영화 한 편을 내리 보면 말랐던 감정면이 제법 빵빵해지기도.
날씨가 정말 좋다면 친구들과 옥상 파티가 어떨까 하기도 하며.)


일터와 같은 건물에 카페가 있는 것. 나에겐 꽤 큰 행운이다. 곁들이는 음료 이상의 역할을 해주니까.
엄청 고소한 아이스라테가 이번 여름의 최대 픽이었지만. 그밖에 계절에는 뜨겁고 향이 짙은 드립 커피가 좋다.
더 강렬한 한 잔은 아메리카노.
그렇게 1층 바에서 한 잔을 받아 옥상으로 올라가면 어제와 같은 루틴의 시작. 자리에 앉으면
자아. 일하자- 라는 마음이 꿈틀댄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루 중 가장 큰 결심이 느껴지는 때.

현재 작업 중인 2곡이 있다.
모두 데모로 만들어질 테고, 컨펌이 나야지 발매가 될 곡들. 그 전까진 말 그대로 경쟁 = 컴피티션.
웅이가 작곡가를 꿈꾸던 20대와 케이팝에 둥지를 튼 지 3년, 그 작은 둥지로 따라 들어간 나는 불과 1년이 채 안된다.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을 하던 한 방향 상황들은 점차 같이 바라 보고 의지 하는 양방향 상황들로 바뀌어갔다. 그만큼 성취가 늘었고, 고민과 징크스도 많아졌다.

그러는 동안 2평도 채 안 될 꼭대기층 작은 방 안에는 꽤 많은 시간이 쌓였다. 그리고 감정들도.
이 곳으로 들어온 후엔 쭈뼛거릴 여를도 없던 것 같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 둘 뭔가가 생기는 장소. 요즘 가장 큰 관심사이자 즐거움이다.


(내 주변에 대한 사소한 생각정리로 시작한 게 이만큼 다다르다니, 사진을 몇 개 올리려고 앨범을 뒤적이다 깨달은 점 하나. 작업실이 너무 깨끗했다...
내일은 영락없이 대청소이다.)

성수동 4F


첫 만남
DIY studio


이야기가 늘어나는 작업실 시간들






ex-home office


여름밤 옥상 코워킹


매거진의 이전글 Sound 하고 Nice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