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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박하고도 Dec 01. 2017

EP18. 제 꿈은 디지털노마드입니다만

세계일주 6개월차 수박 겉햟기 디지털노마드 르뽀

WRITTEN BY 지랄방구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여행 이후의 삶을 고민한다. 죽을때까지 이렇게 여행자로 살다가 길에서 객사하는 삶도 나름 낭만적일까. 외국인들에게도 호의적인 어떤 나라에 이민을 도전해 볼까. 이도저도 안되면 어쩔수 없이 투덜투덜 조선에서 남은 여생을 버텨볼 것인가. 여행자들이라고 다들 욜로족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개중에는 어딘가에 정착해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게 미래를 구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고민에 대한 또 다른 선택지를 그간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풀어보려 한다. 길에서 줏어들은 디지털노마드들 이야기다.

이제 바다는 좀 지겹군

디지털 노마드라고 표현했지만 방점은 디지털보다 노마드에 찍은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 소개되는 여러 예시중 많은 부분이 '디지털' 노마드들이지만 더러는 아날로그 노마드들도 있다. 잠깐. 혹시라도 이 신조어가 생소한 자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디지털 노마드란 말그대로 "디지털을 기반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사회의 경계가 워낙 허물어져 있다보니 어떤 한 장소에 국한되는 삶의 방식은 어쩌면 굉장히 고리타분한거다. 우리가 해외직구로 뉴욕의 육아용품을 살 수 있다면 내 노동력이 베를린 어딘가에서 활용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전세계를 다니며 돈을 벌면서 살 수 있다는거다. 굳이  대도시에서 비싼 월세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고, 저녁이 있는 삶을 투쟁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 그저 저녁이 있는 나라에서 일하면 된다. 서두는 이쯤해두고 몇가지 분류에 따라 우리가 만난 유목민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본다.


공대인들이여 유목하라!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약간 생소하다. 발칸반도는 인종, 종교, 문화적인 이유로 수십년에 걸친 내전으로 국경이 수도 없이 수정됐다. 몬테네그로는 발칸반도 서남부에 있는 나라인데 우리는 '코토르'라는 도시에서 가장 일반적인 디지털 노마드를 만났다. 그는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코스타리카인이었다. 한 1년정도 세계여행을 하는 이였는데 나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고 영어도 짧아 그가 어떤방식으로 일하는지, 회사에 소속되어있는지 프리랜서인지 구체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는 우리가 여행에서 만난 최초의 디지털노마드였다. 여행하며 돈을 벌기위해 필요한건 단 두가지다 랩탑과 와이파이. 전세계를 다니며 되도록 싼 숙소를 잡고 밤에는 컴퓨터로 뭔가를 뚝딱거리고 낮에는 그 도시의 명소를 다니거나 등산을 하거나 수영을 한다. 그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사실 자체도 재밌었지만 더 재밌는건 그의 여행수단이었다. 그는 바이크로 세계일주 중이었다.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야 할때만 잠깐 비행기나 배를 타고 나머지는 주로 오토바이로 여행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 굉장히 싸고 효율적인 여행방식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오토바이는 차보다는 훨씬 기름을 덜먹고 웬만한 곳은 다 갈수 있다. 사하라의 유목민들이 낙타로 사막을 다녔으니 디지털 노마드에게 오토바이는 꽤 괜찮은 연결고리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유명인도 비슷하게 노마드하고 있다. 이두희. 지니어스, 천재해커로 유명한 그가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의 말을 빌면 "월 500의 강남 사무실을 알아보다가 이 정도 돈이면 세계를 다니며 일 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며 서울을 박차고 나왔다. 이두희씨의 여행이 또 한편 재밌는건 그의 노마드는 팀단위의 이동이라는 것이다. 그의 여행은 혼자가 아니다. 프로그래머가 있고 디자이너가 있고 심지어 여행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편집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이두희의 행보는 늘 흥미롭다. 학생시절 서울대학교 학생부를 해킹해서 김태희의 사진을 빼냈던 일화. 지니어스2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최근에는 대학교를 돌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딩교육을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 이름같이 '멋쟁이 사자처럼' 사는 사람이었고 그 사자가 지금 전세계를 유목하고 있다.

디지털 잠순이

문송하지 마세요

고등학교 2학년때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문송하는(문과라서 죄송한) 이들에게도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열려있다. 터키 셀축에서 우리는 1박 8천원짜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보통 게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편하게 인사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게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그런데 아침에 중정에서 이야기 나눴던 한 터키인 여행자가 저녁이 됐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신기해서 "너 여기 하루 종일 있었어?"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여기서 뭐했는데?"하고 물으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Working" 그의 직업은 번역가였다. 그는 터키 국적으로 독일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터키어, 독일어, 영어 3개국어를 넘나들며 번역을 하며 살고 있었다. 역시나 랩탑과 와이파이만 있으면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클라이언트로부터 일을 받아 처리하고 여행을 하고 또 일이 들어오면 와이파이가 잘되는 숙소를 찾아간다. 그로부터 번역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가지 들었는데 번역은 언어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한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라는 것이다. 그의 전문성은 의료기기 쪽이었다. 의료기기 관련 전문 지식과 고급어휘를 잘 알고 있기에 관련 업체의 일들을 따낼 수 있었다. 그는 내게 강조하며 이야기했다. "간단한 정도의 번역이라면 구글번역기로도 충분히 가능해. 트랜슬레이터는 늘 자기분야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체불가능한 영역을 만들어야 하지" 되게 뻔한 이야기지만 디지털 노마드에게는 핵심적인 명제다. 전문성과 대체불가능.


문과인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나 언어다. 천연염색으로 유명한 모로코 페즈에서 우리는 영국에서 이탈리아어 선생님과 댄스강사 일을 하고 있는 한 이태리인을 만났다. 그는 하루종일 해드셋을 끼고 앉아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스카이프를 활용해 영국에 있는 자신의 제자와 전화 이탈리아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들 말고도 가끔 장기여행자들 중 떨어져가는 여행비를 보충하기 위해 언어선생님을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보통 한 도시에서 2개월 정도 머물며 도시 게시판에 언어 관심자들을 모집해 그들에게 기초를 가르친다고 한다. 해외에 나와보니 케이팝의 열기가 꽤나 뜨겁다. 혹시 그 팬들을 위한 한국어 강사로 잠깐 일해보는건 어떨까? 대우는 망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1일 1나따

돈 버는 여행자들

여행하며 듣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런 것 아닐까 싶다. 한 50대 남성이 삶이 이렇게 재미없어도 되나 싶어 자신이 가진 재산을 다 정리했다고 한다. 퇴직금과 갖고있던 자산들을 정리하니 대략 2억정도 됐단다. 세계일주 이후에 집을짓고 살 생각으로 1억으로 제주도에 작은 땅을 사고 1억으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거다. 이 이야기는 벌써 몇년전 이야기니까. 월세를 주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 여행을 다니며 꾸준히 주식을 하기위해 한국 장에 맞춰 일어나는 사람들, 한인 민박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사람들까지 현대의 유목민들에게 오아시스는 생각보다 이곳저곳 많이 있다. 우리도 소소하지만 여행하며 돈을 벌었는데 아내가 찍었던 영상을 한 아웃도어 업체에서 자사 행사에 사용하는 댓가로 10만원을 보내왔다. (물론 세금은 떼더이다) 소소하지만 그래도 우리 통장에 오랜만에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찍힌 날이었다. 생각보다 세계에는 일거리가 많고 정착민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근근히 살아갈만 한 것도 같다. 그래서 그렇게 503은 한국청년들을 중동으로 몰아내려 했던가? 아 이건 너무 많이 나갔다.


글을 마무리하며 독일에서 유학중인 아는 동생을 만났을때 내가 했던 말을 남긴다.


"한국에서 살기보다 외국에 살면서 가끔 한국으로 여행가는 삶이 좋은 것 같아"


이상 수박 겉햝고 있는 6개월차 여행자의 디지털 노마드 찬양기였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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